그럼요 대화가 되죠

엄마와 치매와 함께 29

by 길 위에서

2년이 채 되기 전에 ㄴ요양원도 문을 닫았고 엄마는 또 다른 요양원으로 옮겼다. 앞의 두 요양원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고 엄마가 말했던 조용한 곳과도 거리가 멀었다. 백 명 가까운 어르신들이 한 층에서 생활하셨고 소란스러워 보일 정도로 활기가 넘쳐 보였다. 일하시는 분들의 얼굴이 모두 밝아서 그랬는지 묘하게 마음이 끌려 그곳으로 정했다.


ㄴ요양원에서는 여러 사건을 겪었어도 의사소통 문제는 없었다. 간호사도 요양보호사도 엄마가 금방 잊어버리기는 해도 대답도 잘하시고 말을 잘 알아듣는다고 했다. ㄷ요양원의 판단은 좀 달랐다. 간호사는 엄마가 대답은 잘하시는데 정작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혼자 일어나 앉을 수 있냐고 물으면 엄마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고개만 조금 든다는 식이었다. 옆 자리의 할머니는 걷지 못하고 귀가 좀 멀기는 해도 휠체어를 타고 혼자 잘 돌아다니고 이야기도 잘하셨다. 나를 볼 때마다 엄마가 대답을 안 한다고 하셨다. 말을 걸어도 대화가 안 되어 답답하신 모양이었다. 이 요양원에서 엄마는 대화가 안 되는 치매 환자로 보이는 듯했다.


내가 방에 들어섰을 때 엄마는 벽을 보고 누워있었고 요양보호사는 휠체어에 엄마를 앉힐 준비를 하고 있었다. 휠체어에 옮겨 앉은 엄마는 좀 멍해 보였다. 요양보호사가 내 이름을 물으니 엄마는 권영순이라는 엉뚱한 어떤 이름을 댔다. 엄마는 절대로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어떤 이름이든 말했다. 그렇게 다양한 이름이 바로 입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엄마가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요양보호사는 엄마가 직진만 할 수 있으니까 나더러 방향을 잡아 드리라고 했다. 나는 엄마 뒤를 따라가면서 가끔 방향만 돌렸다. 복도 한쪽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갑자기 휠체어에서 손을 뗐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엄마한테 왜 안 가는지 물어보려고 했다. 엄마의 고개가 옆을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텔레비전에서 노래자랑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어떤 남자가 베사메 무쵸를 멋지게 부르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화면을 잘 볼 수 있게 휠체어를 돌려 드렸다. 노래가 끝나자 엄마는 조용히 박수를 쳤다. 그 노래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노래를 좋아했다.


그다음 주에 방문했을 때 엄마는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의 뿌연 유리창 너머로 크레인이 있는 아파트 공사 현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삭막해 보일 수 있는 풍경을 엄마는 열심히 내다보고 있었다.

“엄마, 뭘 봐?”

“저 밖에 왔다 갔다 하는 것들.”

옆에서 일하던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말했다.

“어르신들이 대부분 창밖 보는 걸 좋아하세요. 그렇게라도 바깥세상을 보고 싶은 것 아닐까요?”

밖을 내다보는 엄마 표정은 밝았다.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쓸쓸한 느낌은 내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입 크기로 잘라서 가져간 황금향을 꺼내 놨다. 그걸 드시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여기 좋아?”

“응.”

“뭐가 좋아?”

“달콤하잖아.”

보통은 “약간 달다”라고 하셨는데 이날은 “달콤하다”라고 표현하시니 반가웠지만 내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귤 말고, 여기 말이야. 편안해?”

“응. “

“여기 뭐가 좋아?”

“사는 게 그렇지 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좋다고 말하면서도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이 모습 보니 정말 내 엄마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우습냐?”라고 하더니 따라 웃었다.


입소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여느 때처럼 엄마와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방에 들른 요양보호사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어머니랑 대화가 되세요?”

그 요양보호사님 눈에도 엄마가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치매 노인으로 보이는 듯했다.

“그럼요, 대화가 되죠.”

나는 대답하고 기쁜 마음으로 웃었다. 당연했다. 엄마가 치매에 걸리기 전보다 우리가 더 많이 서로에게 집중하면서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도돌이표 같은 대화가 많았다. 만날 때마다 이런 식의 대화를 자주 했다.

“너 몇 살이야?”

“쉰셋. 아니 이번에 쉰넷 됐네. 엄마는 몇 살이야?”

“나는 팔십셋.”

“그래?”

10초쯤 뒤 엄마가 다시 물었다.

“너는 몇 살이야?”

“쉰넷.”

“나는 구십둘.”

“그렇구나.”

마주 앉아 있는 1시간 남짓 동안 이런 대화를 여러 번 했다. 엄마는 당신 이름을 정확히 대답하고 개띠라는 사실도 늘 기억했지만 대답하는 나이는 늘 바뀌었다.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일 수 있다. 나도 내 나이를 대답하려면 한참 계산해야 하니까. 한때 나는 엄마 나이를 정확히 알려 주려고 애썼다. 그러면 엄마는 종종 우기면서 화를 냈다. 언젠가부터 엄마가 말하는 대로 그냥 들었다. 엄마 나이는 여든둘이 되었다가 아흔여덟이 되었다가 여든아홉이 되었다. 크게 상관할 일도 아니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엄마 말 잘 들어주는 딸이 전혀 아니었다. 엄마가 치매 걸리기 전에는 이런 대화를 수시로 했으니까 말이다.

“엄마, 그 얘기 벌써 몇 번 째야? 전에도 여러 번 말했잖아!”

“딸이 그것도 못 들어주냐? 꼭 너 같은 딸 낳아 봐라!”

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다. 이 가물가물한 느낌이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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