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선택권이 있다

엄마와 치매와 함께 27

by 길 위에서

ㄴ요양원도 엄마가 지내시기에 꽤 괜찮은 곳이었다. 내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렸는데 나쁘지 않았다. 시설이 깔끔했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도 따뜻했다. 요양원으로 정기 진료를 오는 촉탁의도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병원의 원장이어서 아주 급할 때는 직접 와 주시기도 한다고 들었다.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종합병원도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경우 빨리 대처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엄마가 그곳에 쭉 계시기를 바랐고, 다시 요양원을 옮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기가 2년쯤 걸린다는 시립요양원에 이름을 올려 둔 것도 취소했다. 아직 때가 아니었지만 간호팀장에게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말도 미리 해 두었다.


그곳에 입소하고 1년 7개월쯤 지났을 때, 또 폐업 소식을 들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같은 재단의 요양병원을 넓히는 건지 요양원을 요양병원으로 바꾼다고 했다. 다시 요양원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눈앞에 떨어졌다.


머릿속이 복잡하던 날, 엄마 앞에서 말을 꺼냈다.

엄마, 우리 곧 이사할 수도 있어. “

“너 이사하냐?”

“나 말고 엄마.”

“난 여기 좋다.”

“이곳 문 닫는대. 그러니까 방 빼야지. 내가 자리 알아보고 있으니까 엄마는 걱정 안 해도 돼. 근데, 엄마는 ‘조오용’한 곳하고, 사람들이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곳 중에서 어디가 좋아?“

“조용한 데.”

“그럼, 작고 아늑한 곳하고 너른 곳은?”

“상관없다.”

나는 미심쩍어서 다시 물었다.

“음, 조용한 곳하고,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자주 노래 부르는 곳 중 어느 쪽이 좋아?”

“조용한 곳.”

“왜?”

“난 시끄러운 곳 싫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다 맞출 수는 없더라도 이왕이면 조용한 곳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나중에 이 조건을 맞추지 못했지만 결과가 나쁘다고 할 수도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점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앞의 두 요양원을 구할 때는 전적으로 내가 판단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이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생활에 묶여 있는 현실은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다면 엄마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싶었다.


오래전, ㄱ요양원에서 음악 발표회가 열린 날이었다. 음악 인지치료를 받는 어르신들의 공연에 나가려고 엄마는 진분홍색 한복을 입었고 그 고운 한복이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간호사 선생님이 분과 립스틱까지 발라 드렸다. 그런데 엄마 치맛자락 아래로 투박하고 파란 슬리퍼가 보였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옆 방에서 분홍색 구두를 가져와서 내게 내밀었다. 나는 엄마한테 그 구두가 마음에 드냐고, 신겠느냐고 물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옆에서 말했다. “뭐 그런 걸 묻고 그래요. 그냥 신겨 드려요.” 그래도 엄마 취향을 존중하고 싶어서 나는 고집스럽게 한 번 더 물었다. 신으려고 했으나 구두가 작아서 결국 신지 못했지만 말이다.


휠체어에 앉아 마음대로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지만, 가능한 것만이라도 선택권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간식을 내놓을 때도 “엄마, 이거 먹을래?”라고 꼭 물었다. 엄마는 늘 잘 드셨지만 그래도 일단 물었다. 이건 내 고집이었다. 나의 노년을 상상할 때 선택권을 놓고 싶지 않은 욕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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