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러운 ‘사랑해’와 몸 인사법

엄마와 치매와 함께 26

by 길 위에서

엄마는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우리의 대화도 자연스러웠지만 치매가 점점 진행되고 있음 또한 사실이었다. 말로 나누는 대화가 어려워지는 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었다. 실제로 엄마 컨디션이 나쁜 날에는 대화가 뚝 끊어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날도 엄마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집에 간다고 인사하자 엄마는 잘 가라고 말하면서 나를 보지도 않았고 분위기가 냉랭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나왔을 내가 심통을 부렸다.

“엄마, 좀 친절하게 말해 주면 안 돼?”

그 한 마디에 엄마 표정이 확 바뀌었다. 내 빰에 손바닥을 대면서 말했다.

“사랑해.”

그 순간 나는 놀라서 얼어붙는 줄 알았다. 어리둥절한 가운데 오래 생각할 문제가 아님을 바로 알아차리고 말했다.

“엄마, 나도 사랑해.”

사랑이라는 단어는 혀 끝에서도 머릿속에서도 어색했다. 50년 넘도록 엄마와 나 사이에서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엄마 덕분에 그 말을 텄다. 면회 후 헤어질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엄마의 컨디션이 안 좋은 다른 날이었다. 요양원 현관을 들어서는 내게 엄마가 아침부터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다고 요양보호사님이 전했다.

“간식도 안 먹겠다고 하세요. 저더러 먹으래요.”

이불을 살짝 걷었더니 약간 뚱한 엄마 얼굴이 드러났다. 다행히 반발은 없었다. 나는 일부러 야단법석을 떨며 홍시를 꺼냈다. 작년 가을에 냉동실에 넣어둔 것이었다.

“엄마, 먹을래?”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숟가락으로 떠 드리는 홍시를 잘 받아 드시면서 그걸 “포도”라고 했다. 다 먹고 나서 말했다.

“산에 가서 죽어야 하는데 여기서…”


요양보호사님은 엄마가 아직 변을 보지 않았다고, 이런 날은 누굴 부르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신다고 말했다. 불편한 상태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배변 문제는 내가 있는 동안 해결되지 않았다. 이불을 또 뒤집어쓰는 엄마를 두고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 이불을 걷으며 말했다. “엄마, 우리 인사하자.” 내가 양팔을 벌리고 다가갔더니 엄마도 양팔을 내 쪽으로 들어 올렸다. 내가 엄마를 껴안자 엄마는 빰을 내 쪽으로 바짝 붙이고 은근히 힘을 주면서 나를 안았다. 그리고 “내 딸~”이라고 하면서 내 등을 토닥였다. 엄마의 가슴과 내 가슴이 아주 편안하게 포개졌다. 나는 땀 날 테니 너무 오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지 말라고 말하고 나왔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가슴과 가슴이 맞닿아서 전해지는 온기가 그렇게 좋을 줄 몰랐다. 왜 진즉 그러지 않았을까? 이날 이후로 나는 엄마를 만날 때마다 적어도 한 번은 서로 껴안고 인사했다.


며칠 후 치매 관련 다큐를 봤다. 한 전문가는 치매 환자와의 관계에서 신체 접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길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넓고 부드럽게 닿는 것이 좋다고 했다. 엄마와 나의 몸 인사법은 가슴과 가슴이 닿고 등과 손이 닿았으니 이 기준에서도 최고의 접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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