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치매와 함께 25
치매 환자가 주변 사람을 도둑으로 모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엄마도 그런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하늘이 잿빛인 날, 날씨 때문인지 엄마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파란색 화장품’에 생각이 꽂혀 요양보호사 한 분을 도둑으로 몰았다. 심지어 “경찰서 가자.”라고 했다. “좋은 말 할 때 내놔요! 안 내놓으면 형사고발합니다.” 형사고발이라고? 엄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놀라웠다.
심각한 소동은 아니었다. 엄마 목소리도 그다지 크지 않았고 요양보호사들도 조금 말리다가 포기하고 가만히 있는 눈치였다. 사물함에 있는 바디로션 병의 뚜껑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게 푸르스름했다. 나는 그 병을 엄마 앞에 디밀었다.
“이거 아냐? 파란색이잖아.”
“이거 먹는 거야?”
“아니, 바르는 거. 화장품.”
“맞네.”
“그치? 도둑맞은 거 아니었네. 여기 둘게.”
“가져와. 좀 바르게.”
내가 펌프를 꾹 눌러 엄마 손에 로션을 짜 드렸다. 엄마는 그걸 얼굴에 바르고 나서 더 달라고 하고 또 발랐다. 그렇게 소동이 끝났다. 적어도 내가 머무는 동안 ‘파란색 화장품’을 찾지도, 요양보호사를 도둑으로 몰지도 않았다.
차분해진 엄마가 물었다.
“너는 어떻게 사냐?”
“일도 하고 밥도 해 먹지.”
“무슨 일 하냐?”
“요즘은 출판사 일.”
“글 찍어 내는 거?”
“엄마 잘 아시네. 그래, 책 만드는 일이야.”
“내 책 갖고 와라.”
“어느 거?”
나는 침대 옆 사물함 서랍에서 책을 몇 권 꺼냈다. 엄마는 금강산 어쩌고 하는 제목의 책을 들고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보기 시작했다. 돋보기 없이 책을 읽을 정도로 시력이 아주 좋았다. 옆에 있는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책만 읽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잘 읽으신다더니, 이 집중력을 말씀하신 거구나. 신기했다.
엄마는 옛날에 책도 보시고 신문 기사와 칼럼을 열심히 읽으셨지만 치매 진단을 받기 훨씬 전부터 신문을 멀리하셨다. 읽고 돌아서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아서 재미가 떨어진다고 하셨다. 그랬던 엄마가 ㄱ요양원에 있었을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식사 후에 바로 누우려고 하는 엄마를 말리느라고 요양보호사가 책을 갖다 드린 것이었다. 요양원에 있는 활자 큰 아이들 책을 드렸더니 엄마가 집중해서 읽었다고 했다. 여러 종류의 책을 시도해 봤는데 엄마가 그림 위주 책보다는 글씨가 많은 책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요양보호사의 부탁으로 내가 김용택 선생님의 동화책 등 책을 몇 권 사다 드리기도 했다.
몇 달의 적응 기간이 지나자 ㄴ요양원에서도 책을 좀 사 오라고 했다. 가지고 있던 책은 엄마가 다 봐서 이제 싫다고 하신다고.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시니 책 몇 권을 번갈아 읽게 했는데 그것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책을 사다 드렸다. 이날 읽은 책은 그중 한 권이었다.
엄마 어깨너머로 책을 들여다보았다. 등장 인물도 여럿이고 줄거리도 꽤 복잡해 보였다. 엄마가 내용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궁금했다.
“엄마, 무슨 이야기야?”
엄마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천천히 책장을 넘기면서 말했다.
“사람 사는 얘기지.”
사람 사는 이야기! 나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찰떡같은 대답이었다. 나는 엄마를 방해하지 못하고 텔레비전 앞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말했다.
“엄마, 나 갈게.”
“그래, 잘 가. “
엄마는 책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곧장 책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나는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엄마가 덜 심심하실 것 같아서 마음이 홀가분했다.
엄마가 전혀 치매 환자 같지 않다가 엉뚱한 말을 하는 바람에 웃음이 터지는 날도 있었다. 2019년 2월 5일 설날이었다. 엄마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간식도 같이 먹으며 즐겁게 지낸 후였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배고프네. 난 집에 가서 밥 해 먹어야지.”라고 말했다. 엄마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눈을 크게 뜨면서 “집에 엄마 없냐?”라고 물었다. 의아했다. 대체 무슨 말이지? 그래서 물었다.
“엄마의 엄마 말이야?”
“아니, 니 엄마.”
“내 엄마는 여기 있잖아.”
“내가 니 엄마야?”
그 말을 하는 엄마 얼굴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은 미처 다 알아차리기도 전에 지나갔다. 어리둥절해서 잠시 말을 잃었다가 하하 웃었다. 엄마도 소리 내서 같이 웃었다. 나는 조금 안심했다.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많이 옅어진 것 같아서.
물론 유쾌하게 웃는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별 이야기가 오가지 않아서 맹숭맹숭하던 날, “엄마, 우리 노래 부를까?” 했더니 엄마는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나도 같이 불렀다. 그런데 엄마는 노래가 끝나면 도돌이표처럼 그 노래를 또 시작했다. 노래가 구슬펐다. 여러 번 불렀더니 더 슬픈 느낌이 들었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이 노래 너무 슬프지 않아?” 엄마는 슬픈 것 같기도 하고 무표정한 것 같기도 한, 그 중간쯤 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슬퍼.” 그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서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된 걸까? 나도 자꾸 부르면 덜 슬퍼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어느 날, 엄마는 또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오늘 내내 저 노래 부르세요. 기분이 안 좋은 날 그러시는 것 같아요.” 엄마는 무슨 주문처럼 중얼중얼 노래를 불렀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리고 엄청 빠르게. 내가 같이 부르자고 해도 엄마는 나를 개의치 않고 엄마가 부르던 대로 불렀다. 그날은 어쩔 수 없이 노래 부르는 엄마를 두고 나왔다.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게 슬픔을 견디는 방법인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