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엄마가 손톱을 깎아 주셨다

엄마와 치매와 함께 1

by 길 위에서

손톱을 내려다본다. 엄마가 깎아 주신 손톱이다. 동그랗고 예쁘게 깎여 있다. 하얀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너무 바짝 깎은 것 같아 손끝을 만져 본다. 살짝 아프지만 괜찮다. 손톱이 길어 찜찜했던 느낌이 사라졌다. 아주 상쾌하다. 내가 묻는다. “엄마는 손톱깎이를 가지고 다녀?” 엄마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침을 먹다가 새벽에 꾼 꿈을 기억해 냈다. 동그랗게 다듬어진 손톱 모양과 홀가분한 느낌이 생생했다. 분명히 엄마와 나는 길을 가는 중이었다. 배경이나 주변 풍경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가 길을 가는 중이었다는 것과 엄마가 직접 내 손톱을 깎아 줬다는 것은 확실했다. 꿈에서는 그랬다.


꿈 덕분에 오래된 일이 기억났다. 실제로 손톱깎이를 갖고 다닌 사람은 나였다. 작년 가을에 돌아가신 엄마는 10년 동안 병원과 요양원에 계셨다. 엄마를 만나러 간 어느 날, 긴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그다음번 면회 때 손톱깎이를 가져갔고 엄마 손톱을 깎아 드렸다. 그때부터 손톱 깎기는 늘 내 가방 안에 있었다. 언제든 필요하면 꺼내서 깎아 드리려고.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가 다듬어 주셔서 내 손길이 필요 없을 때도 많았지만 말이다.


한 번은 내가 물었다. “엄마가 직접 깎을래?” 뭐든 엄마가 할 수 있다면 엄마 손으로 직접 하는 편이 좋으니까. 엄마가 고개를 끄덕여서 손톱깎이를 건넸다. 엄마는 손톱깎이를 손톱 아래 깊숙이 밀어 넣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가 기겁을 하고 엄마를 말렸다. 그 후로는 절대로 엄마한테 손톱깎이를 넘기지 않았다.


손톱을 깎아 드리고 나면 엄마는 살짝 주먹 쥔 손을 눈 아래 놓고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손톱 하나하나를 꼼꼼히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하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였지만 몇 초 후 다시 손톱을 들여다봤다. 남아 있는 하얀 손톱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분명했다. 가끔은 손톱을 더 깎아 드리기도 했지만 보통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더 깎으면 아플 수 있어.” 그러면 엄마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대화는 손톱을 깎아 드릴 때마다 반복되었다.


현실에서는 내가 내 마음 가는 대로 엄마 손톱을 깎아 드렸고, 꿈에서는 엄마가 엄마 스타일로 내 손톱을 깎아 주셨다. 현실에서는 엄마가 내 방식을 받아 주셨고, 꿈에서는 내가 엄마 방식을 받아들였다.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엄마가 내 방식을 따라 주신 숱한 일들을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진짜 사실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한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치매 탓이 컸다. 지나고 보니 정말 ‘한때’였다. 이후에 치매 앓는 엄마와 마음을 나눈 시간이 훨씬 많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지난 봄 꿈에서 엄마가 깎아 준 손톱을 머릿속에서 더듬어본다. 모양은 희미한데 그때의 상쾌함은 지금도 몸에서 살아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