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상했다

엄마와 치매와 함께 2

by 길 위에서

2013년 10월 그날을 뚜렷이 기억한다. 내가 부모님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을 때는 9시가 다 되어 깊숙이 들어온 햇빛으로 거실 전체가 환했다. 웬일인지 아버지는 거실 한가운데 이부자리에 누워 계셨다. 아버지를 불렀으나 아무 대답을 듣지 못했다. 조용히 엄마가 계시는 작은 방으로 갔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마주하고 계셨다.

“아버지 아직 주무시네. 별일 없어?”

“그렇지, 뭐.”

엄마는 나를 향해 고개를 반만 돌리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엄마, 우리 집 너무 시끄러워. 윗집 이사 가나 봐. 일할 거랑 책 갖고 어디 카페 같은 데 가는 길에 그냥 와 봤어.”


엄마는 대꾸가 없었다. 거실로 나와 다시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몸부림을 치신 건지 왼쪽 팔과 다리는 요 바깥으로 나와 있었고 몸이 비틀려 있는 듯했다. 뭔가 이상했다. 얼굴도 일그러져 보이고 눈을 감으신 건지 뜨신 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내가 곁에 앉아 아버지를 또 부르자 아버지는 요 밖에 있던 왼손을 천천히 움직여 내 손을 잡고 오른쪽 가슴 위로 끌어당겼다. 고통스러운 표정이셨고 말씀을 못하셨다. 무슨 일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엄마, 엄마! 아버지 이상해!”

소리치자 엄마는 느릿느릿 방에서 걸어 나왔다. 아버지를 흘끗 보더니, “못 일어나시네.”라고 한 마디만 하고는 방으로 되돌아가셨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버지가 신장 투석을 다니시는 병원의 수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빨리 구급차를 부르라는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119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주소를 알렸다. 두 달 전에 아버지를 모시고 응급실에 갔을 때 집에 머물던 엄마가 수시로 전화를 하는 바람에 일을 보기가 무척 어려웠던 걸 기억하고 다시 엄마한테 소리쳤다.

“엄마도 병원 같이 가게 빨리 옷 갈아 입어.”


뭘 챙겨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을 때 구급대원이 왔다. 서둘러 아버지를 옮길 준비를 했다. 나는 구급대원을 따라가면서 엄마를 다시 불렀다. 엄마는 방에서 딱 한 발짝만 나왔는데 잘 때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

“왜 그래? 안 되겠네. 엄마는 집에 있어. 내가 전화할게.”


엄마를 두고 나만 구급차를 탔다. 5분도 안 되어 근처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 앞에서 참을성 있게 대기하고 있으면 가끔 의사가 나와서 질문을 했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이상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의사는 뇌경색 진단을 내렸으나 증상이 나타난 시각을 모르니 혈전 용해제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어느새 12시가 넘었다. 그제야 나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괜찮아? 별일 없어? 내가 못 가니까 혼자 점심 챙겨 먹어.”

엄마는 벌써 밥을 먹었다고 했다. 엄마 혼자 점심을 챙겨 드셨으니 잘하셨다고 말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말투가 시큰둥했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다. 두 달 전과는 딴판이었다. 엄마는 아버지 걱정을 안 했을 뿐 아니라 약간 화가 나 있는 것도 같았다.


혼자 집에 있는 엄마도 걱정이었지만 당장은 아버지 상태가 우선이었다. 응급실 의사는 중환자실로 옮기고 다시 CT를 찍어 볼 거라고 했다. 이미 상태가 심각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밤늦게 엄마가 혼자 계시는 집으로 갔다. 밤새 혼자 잘 자신도 없었고 엄마도 걱정스러웠다. 내가 엄마 집에서 자겠다고 하자 엄마는 또 버럭 화를 냈다.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다.

“니가 왜 여기서 자? 너 집에 가서 자! 왜 늙은이 집에서 자려고 해?”

나는 쫓겨났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큰길 건너 내 집으로 갔다. 엄마와 나는 힘든 시간을 각자 견뎌야 할 형편이었다.


엄마는 확실히 이상했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고민 끝에 혼자서 엄마 담당 의사를 만나러 갔다. 엄마는 2년 가까이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 뇌출혈 사고 후 치매 진단을 받아 약을 5년 넘게 복용하던 중이었다. 의사는 엄마가 많이 불안하고 아버지 상황이 두렵기도 하고 지쳐서 쉬고 싶은 심정까지 뒤섞여 있을 거라고 판단하며 입원을 권했다. 그 권유는 따르지 못했다. 대신 도움을 구하기로 마음먹고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씀드렸다. 외삼촌은 흔쾌히 와 주겠다고 하셨고 이모에게도 소식을 전하셨다.


며칠 후 외삼촌과 이모가 오셨다. 아버지 면회를 다녀온 뒤 엄마를 모시고 나가 저녁을 먹을 참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허리 아파서 못 움직이겠다고 하며 병원도 안 가겠다고 버텼다. 엄마를 설득하다가 지친 우리는 일단 밥을 먹고 오기로 했다. 식탁 위에는 고구마와 과일을 올려 두고 나갔다.


밥을 먹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방으로 걸아가는 중에 등을 보이고 서서 현관 쪽을 뒤돌아보았다. 세수를 하고 로션도 바른 얼굴이었고, 잘 준비를 했는지 거실 커튼도 닫혀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없는 사이에 식탁 위 먹을 것도 드신 눈치였다. 우리는 아무 내색 다녀왔다고 인사하며 들어갔고, 서로 눈짓을 하며 내심 안심했다. 엄마는 침대로 가서 누웠다.


다음날부터 엄마를 돌보는 일은 외삼촌이 맡으셨다. 상냥하게 달래고 일으키고 부축해서 식탁 앞에 앉게 했다. 당장의 위기 상황은 넘길 수 있었지만 엄마를 위한 장기적 대책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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