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치매와 함께 3
이모는 엄마한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언니는 치매 걸리기 딱 좋은 성격이야.”
뭐든 마음에 묻고 사는 엄마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 걱정은 2008년에 현실이 되었다. 이웃들이 아파트 입구 계단에 넘어져 있는 엄마를 발견해서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옮겼는데, 엄마는 뇌출혈로 반신이 마비되었고 이어서 치매 진단을 받았다. 몸은 점차 기능을 되찾아 다시 걸을 수 있었지만 기억력은 나날이 떨어졌다.
엄마는 치매 진단 후 5년 반을 집에서 지내셨다. 이십여 년 살았던 익숙한 환경이고 아버지가 옆에 계셔서 가능했다. 내가 엄마 집 근처로 이사하기까지 2년 넘게 엄마가 집안일을 감당했다. 아파트 단지에 장이 서는 날, 부모님은 단골 가게에서 과일을 많이 사고 다른 가게에서 산 반찬거리까지 맡기면 과일 파는 분이 몽땅 배달해 주셨다. 외식을 극도로 꺼리던 아버지가 집밥을 포기하고 매일 아파트 단지 앞 노인복지관에 가서 점심을 먹겠다고 하신 것도 엄마를 위한 결심이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엄마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 가는 날을 벽에 걸린 큰 달력에 표시해 뒀다. 한두 해 동안은 그런 약속을 지키는 데 문제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전날밤에 전화를 걸어 병원 가는 날을 알렸다. 그다음엔 당일 아침에 전화를 해야 했고, 차츰 그런 전화조차 소용이 없었다. 내가 집에 가서 외출 준비를 독촉해야 했다. 나중에 엄마는 병원에 가서 나랑 같이 걷다가 불쑥 이렇게 묻기도 했다.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처방받은 치매약을 꾸준히 복용해도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는 엄마가 약을 잘 챙겨 먹는 일은 큰 부담이었다. 내과에서 처방받은 고혈압 약과 고지혈증 약도 있었고, 우울증과 치매 관련해서는 아침, 점심, 취침 전 약이 다 달랐다. 내가 약을 점검할 때마다 남아 있는 약의 수가 맞지 않았다. 엄마가 가끔 빠뜨렸거나 두 번 먹었기 때문이겠지만 엄마는 제대로 다 챙겨 먹었다고, 병원에서 약을 잘못 준 거라고 우기면서 화를 냈다. 나는 약봉지 처방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다음 진료 때 하루에 약 먹는 횟수를 줄이고 단순하게 할 수는 없는지 물어봤다. 의사는 어떤 약은 종류를 바꿔서 하루 복용 횟수를 줄였고 같은 시간대에 먹는 약은 한 봉지로 모아 주었다. 약 챙겨 먹는 과제가 좀 단순해져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 날 엄마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와 같이 응급실에 가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신장 약을 몇 년째 드셨지만 신장 기능이 계속 떨어졌으나 투석을 해야 한다는 의사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살 수 없다고. 결국 발이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심각한 상태로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첫날은 치매 초기이던 엄마가 아버지 옆을 지켰다. 나는 지방에서 일을 끝내고 다음날 아침에 병원으로 갔다. 위급 상황이라 긴장해서 그랬는지 엄마는 아버지 돕는 일을 잘하고 계셨다. 믿기 힘들 정도였다. 밤 10시가 넘으면 어느 쪽 출입문이 잠기니 어디 어디로 돌아서 나가야 한다고 내게 알려줬다. 병원 구조가 꽤 복잡했는데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던 엄마가 전날밤 경험을 바탕으로 내게 미리 주의사항을 일러주셨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전혀 치매 환자 같지 않은 상태는 지속되지 못했다. 엄마는 내게 아버지 돌보는 일을 넘기고 집에 머물자 예전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20일 만에 퇴원하는 날이 되었다. 아버지 맞을 준비로 좀 부산했는데, 엄마는 자꾸 이상한 질문을 했다.
“너는 왜 너네 집에 안 가고 아직 여기 있냐?”
“엄마, 오늘 아버지 퇴원하시잖아.”
“아, 맞다. 내가 깜빡하고.”
이 대화를 반복했다. 엄마는 분명히 나빠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투석을 받게 되자 아버지는 당신 몸 외에는 신경 쓸 기력이 전혀 없었다. 부모님의 독립생활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결국 내가 부모님 집에서 도보로 10분쯤 걸리는 곳에 집을 구하고 이사했다. 가까이 살면서 주로 한 일은 장보기, 저녁 식사 후 설거지와 뒷정리, 청소, 엄마 모시고 병원 다녀오기, 가끔 엄마 설득해서 외식하기 등이었다. 두 분이 20년 넘게 이어온 생활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게 도와드리는 역할이었다. 살림을 잘하지도 못하고 체력적으로도 한계를 느끼던 나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두 분의 생활을 가능한 한 예전대로 유지한 것은 잘한 선택이었고, 남아 있는 능력을 발휘하시게 하는 것이 두 분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요리는 엄마가 거의 다 했다. 나는 장을 봐 드리고 설거지를 하고 치우는 일만 했다. 그런데 내가 엄마 부엌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일하기 편하게 변화를 주고 싶어서 엄마 허락을 받고 배치를 좀 바꿔 놓았다. 그런데 다음 날 집에 가 보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그런 일을 두어 번 겪고는 내 기준으로 편리하게 바꿀 욕심을 내려놓았다. 부엌의 주인은 여전히 엄마고 나는 그냥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