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치매와 함께 4
떨어지는 기억력만큼이나 뚜렷하게 나타나는 치매 증상은 감정 기복인 것 같다. 치매 진단을 받은 주변 어르신들 상황을 들어보면 갑자기 화를 낸다는 사연이 많다. 엄마도 불쑥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고 고집을 부리는 일이 잦았다.
투석하러 가시는 아버지를 병원에 모셔드리고 엄마 집에 간 날이었다. 마침내 생일 며칠 후였다. 엄마가 신기하게도 생일을 기억해서 미역국을 끓이셨다. 나는 조개를 넣고 뽀얗게 끓이는 엄마 표 미역국을 무척 좋아했다. 우리는 한 상 차려서 맛있게 기분 좋게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밥을 먹고 난 직후부터 뜬금없이 불평이 시작되었다. 내용은 이런 거였다. 내가 영국에 있었을 때 쌍둥이 칼을 사달라고 한 엄마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몇 년 뒤에 국내 백화점에서 쌍둥이 칼을 발견한 내가 사 줄까 하고 물었는데 엄마는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엄마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 “니가 나한테 해 준 게 뭐 있냐?”
쌍둥이 칼 사건은 내 기억에 흔적도 없었다. 독일제 쌍둥이 칼이 뭔지도 몰랐다. 억울했지만 치매에 걸린 엄마한테 따질 수도 없었다. 엄마의 화풀이는 자주 일어났다. 엄마는 내 옷과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며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라고 외쳤다. 모든 게 다 내 탓이었다.
나한테만 화내는 것도 아니었다. 외식을 하러 중국집에 갔다가 소동이 벌어졌다. 엄마 자리와 등이 맞닿는 자리에 어떤 아주머니가 의자를 뒤로 민 상태로 앉아 있었다. 엄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이렇게 의자를 뒤로 빼고 앉아 있어요?” 아주머니는 좀 비키라고 말하면 될 텐데 왜 화를 내느냐고 대꾸하면서 눈을 흘겼다. 나도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상황 자체가 처음이었다. 내가 아주머니께 조용히 사과했다. 다행히 말다툼은 그걸로 끝났지만 밥 먹는 내내 엄마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또 다른 날에는 엄마가 혼자 외출했다. 아버지 속옷을 사 오겠다고 말하고 오후에 나간 엄마가 저녁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는 집 근처를 찾아보고 엄마가 갈 만한 백화점과 속옷 가게도 다 가보았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집에 왔다가 다시 엄마를 찾아 나섰지만 또 허탕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라고 아버지도 걱정하셨지만 일단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불안한 가운데 저녁 상을 차리고 있을 때 엄마가 돌아왔다. 잔뜩 불편한 얼굴이었다. 어딜 다녀오느냐고,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하자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니가 걱정을 왜 해?” 나는 무서워서 더 이상 묻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당신 몸이 힘들어서 신경 쓸 여력이 없으셨는지 따지지 않으셨다. 나는 몇 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짐을 정리하다가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속옷을 옷장 안에서 여러 벌 발견했다. 엄마가 아버지 속옷을 사다 놓고도 기억을 못해 자꾸 새 옷을 산 것이었다.
엄마 기억력은 나날이 떨어졌다. 물을 끓이느라 가스레인지 불을 켜 놓은 걸 잊어버리는 바람에 집에 있는 주전자와 냄비를 하나씩 다 태웠다. 며칠에 한 번 꼴로 내다 버려야 했다. 불이 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말리지 못한 행동이 하나 더 있었다. 원래 엄마는 잘 쓰지 않는 물건을 집에 두는 걸 싫어했다. 치매가 진행되자 물건을 버리는 일이 더 잦아졌다. 아버지도 나도 집에 없을 때 엄마는 장롱을 뒤져보고 이 물건 저 물건을 갖다 버리셨다. 필요한 물건까지 집에서 사라졌다. 그걸 막을 길이 없었다. 지난겨울에 쓴 전기요를 내가 찾으면 엄마는 그런 게 우리 집에 어디 있었냐고 되물으며 화부터 냈다.
마침내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집에 갔더니 평소와 달리 엄마가 약간 기가 죽고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떼면 엄마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아버지 눈치를 살피셨다. 뭔가 큰 잘못을 했음이 틀림없었다. 아버지는 보관할 서류와 돌아가신 할머니 사진 등을 작은 여행 가방 하나에 차곡차곡 넣고 그 가방을 장롱 위에 올려 두셨는데 그게 통째로 사라졌다. 물건 버리기 달인이던 엄마가 아버지 가방까지 내다 버린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 가방은 이미 쓰레기 차에 실려 사라진 듯했다. 집이 발칵 뒤집혔을 만한 일이었는데 아버지는 속으로만 화를 삭이고 계셨다. 그 가방 안의 물건이 몹시 아쉬운 아버지는 딱 한 번 불만스럽게 말씀하셨다. “중요한 가방을 내다 버려 가지고는! 장롱 위에 있는 무거운 가방을 도대체 어떻게 내린 거야?”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눌러 두었던 화가 터져 나오나 보다 생각했는데 다행히 불길은 번지지 않았다. 그 한 마디가 끝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차분함에 놀랐다. 환자를 상대로 화를 내서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으셨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우리 집에서 주로 화내는 쪽이던 아버지가 완전히 변하셨다. 나는 아버지만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끔은 여전히 상황을 따져 묻곤 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