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냐 요양병원이냐

엄마와 치매와 함께 7

by 길 위에서

아버지는 뇌경색 위기를 넘기셨지만 반신 마비에 음식도 드실 수가 없었고 말씀도 못하셨다. 대학병원에서는 요양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다. 투석을 받을 수 있는 요양병원을 찾았고 곧 그곳으로 아버지를 모실 예정이었다. 평소에 아버지는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상황이 닥치고 보니 아버지가 미리 생각해 둔 대처 방안은 현실적으로 적절치 못했다. 딸이 없는 낯선 집에 치매 환자인 엄마가 혼자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오래 살던 익숙한 집이어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엄마는 위태로웠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아버지가 계실 병원에 엄마도 입원시키기로.


결정은 쉽지 않았다. 내가 엄마를 버리는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아마도 시설로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감정일 것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그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몇 년 지난 후 돌아보니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엄마의 의식주를 챙기는 일만으로도 벅차 돌봄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았을까. ‘독박 간병’의 안타까운 사연을 미디어에서 접할 때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엄마가 안정을 찾자 기대치 못한 행복한 순간도 생겼다. 그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엄마의 입원은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기 하루 전으로 정했지만, 엄마가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엄마의 속옷과 양말 등을 챙겼다. 외삼촌이 따뜻한 물수건으로 엄마의 얼굴과 손발을 닦이고 엄마가 옷을 갈아입게 도왔다. 엄마는 눈치를 챘는지 “나 입원하냐?”라고 묻고는 순순히 따르셨다. 입원하기를 오히려 기다린 게 아닌가 싶었다. 요양병원에서 온 분들이 이동식 침대로 옮길 때도 엄마는 가만히 계셨다.


입원 후 엄마는 간호사와 간병인의 지시를 따라 복도를 몇 바퀴씩 걸었다. 엄마의 막무가내 행동은 계속되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간병인의 복대를 허리에 둘렀다. 옆 할머니의 보행 보조기를 자꾸 쓰셔서 보행 보조기도 새로 구입했다. 새 보행 보조기는 훨씬 더 좋은 것이었는데도 엄마는 옆 할머니 것과 똑같은 걸 가져오라고 했다. 병원 앞 의료기 가게에는 그런 게 없다고 하자 엄마는 새 물건을 갖다 버리라고 소리쳤다. 사실 보행 보조기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간병인 말에 따르면 엄마는 보행 보조기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보행 보조기를 그냥 앞으로 밀면서 걸었다.


이런저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병원에 잘 계셔 주셔서 나는 한시름을 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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