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과 헤어짐

엄마와 치매와 함께 8

by 길 위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날, 이동식 침대에 몸이 고정된 아버지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요양병원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중에도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주위를 살피셨다. 말씀을 못하시니 당신 눈으로 직접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 병실과 엄마 병실은 병실 두 개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아버지께는 엄마가 같은 병원에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다. 엄마가 입원한 걸 아시면 몹시 실망하시거나 화를 내실 것이 분명했다.


엄마는 복도 산책을 매일 했다. 아버지 병실 앞 복도를 하루에도 몇 번씩 걸어서 지나갔다. 두 분 모두 같은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비밀이었다.


두어 주 지난 뒤, 두 분이 복도에서 마주친 순간을 아버지 간병인이 전했다. 아버지가 탄 휠체어를 밀면서 병원 복도를 빙 돌아 산책하던 중에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엄마와 딱 마주친 것이었다. 아버지의 놀라움은 컸다. “왜 당신이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고 들었다. 실망을 넘어 분노하셨을 수도 있다. 그 후로 엄마는 가끔 아버지 방을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반기지 않으셨을 뿐더러 엄마 쪽을 잘 보지도 않고 침대 앞만 바라보았다. 엄마까지 입원해 있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 침대 옆에 잠시 잠자코 서 있다가 돌아갔다.


내가 매일 두 병실과 집을 오가는 생활이 한 달 넘게 계속되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침대에 앉아 계시게 일으켜 드리면 혼자서 엉덩이를 움직이며 스스로 재활운동을 시도하셨다. 조금씩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혹시 회복하시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다. 사촌동생은 아버지가 남은 에너지를 당겨 쓰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하며 그런 기대를 경계했다. 그 말이 맞았다. 아버지는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다시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갔다가 그곳에서 며칠 후 돌아가셨다. 쓰러지신 지 60일 만이었다.


나는 아버지 죽음을 엄마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미 너무 혼란스러운데 또 다른 충격을 겪게 할 수 없었다. 친척들도 동의했다. 엄마에게는 일이 바빠서 며칠 병원에 못 온다고 말하고 아버지 장례를 치렀다.


아버지의 죽음을 엄마한테 언제 어떻게 알릴지 한동안 큰 고민거리였다. 당장은 다른 병원에 계시는 것처럼 말했다. 엄마의 치매가 진행되면서 그런 고민이 무색해졌다. 엄마는 남편에 대한 기억과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기억이 뒤죽박죽되었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말했다가 어느 언덕에서 아버지가 공을 차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년쯤 지난 뒤, 돌아가신 아버지를 납골당에 모셨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렸다. 내가 걱정한 충격은 없었다. 그걸 기억 못 하고 엄마는 가끔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나 보러 한 번도 안 온다.” 내가 “섭섭해?”라고 묻자 “그런 거 없다.”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치매 진단 전에 뇌출혈 사고를 겪었다. 이웃들이 아파트 입구 계단에 넘어져 있는 엄마를 발견해서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다행히 수술 없이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밥도 안 먹고 몸부림치며 자꾸 뛰쳐나가려고 하다가 결국 침대에 팔을 묶이게 되었다. 그러는 엄마를 달래고 한 숟가락이라도 밥을 먹게 하려고 애쓴 사람은 아버지였다. 평소에는 사소한 일에도 화를 불쑥불쑥 내던 아버지가 한 번도 큰소리치는 일 없이 끈기 있게 엄마를 돌보셨다. 이모가 나중에 내게 말했다. “아버지가 네 엄마한테 하는 걸 보니까 평생 엄마를 힘들게 하셔서 미웠던 게 다 사라지더라.”


우리 부모님이 세상에서 가장 서로 안 맞는 부부라고 생각했던 건 그야말로 철없고 주제넘은 내 생각이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기 위해 발급받은 서류에는 오빠와 언니의 사망 사고가 기록되어 있었다. 호적 등본이었나? 오래된 손 글씨 기록이었다. 내 시선이 멈춘 곳은 사고 내용 자체가 아니었다. 두 번 다 아버지가 직접 동사무소를 찾아가 사망 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처음 눈으로 확인했다. 나는 아버지가 자식 잃은 아픔을 견디고 사셨다는 걸 한 번도 헤아리지 못했다. 아버지를 애도하는 시간은 막연히 예상했던 것보다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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