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험한 길

엄마와 치매와 함께 9

by 길 위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나는 엄마의 유일한 보호자가 되었다.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엄마의 치매도 급격히 나빠지는 게 눈에 띄었기에 엄마를 좀 더 안정적으로 모실 수 있는 곳이 간절했다. 요양병원을 몇 군데 돌아보았다. 집에서 도보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도 가 봤다. 내 짐작에 평균적인 시설을 갖춘 요양병원이었다. 크게 흠잡을 것도 없고 여기다 싶을 정도로 끌리는 것도 없었다.


다른 요양병원을 방문하는 날, 친한 선생님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십여 년 전에 치매 걸린 엄마와 같이 산 경험이 있어서 내가 답답할 때 연락하면 도움 되는 말씀을 많이 해 주신 분이었다. 상담 가기 전에 함께 엄마를 먼저 만났다. 병실에 들어섰더니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아주 차분했다. 낯선 사람을 보자 아주 밝고 상냥한 표정으로 “누구?”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자신을 선배라고 소개했다. 마침 점심때였다. 엄마는 나가서 점심을 대접하라고 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밖으로 나와서 선생님에게 물었다. “오늘 엄마가 이상하네요. 요즘 맨날 나한테 화만 냈거든요.” 낯선 사람을 보고 바짝 긴장해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신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가 체면을 차리느라 좋은 의미에서 긴장을 한 모양이었다.


이날 방문한 요양병원은 2차 의료기관인 병원과 붙어 있었고 일단 병원에 입원해서 모든 검사를 받고 나서야 요양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상담 후 그곳으로 결정했다. 비용이 좀 높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전문적인 돌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깔끔하고 따뜻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병원을 옮기기로 한 날 엄마를 어떻게 모시고 갈지 고민스러웠다. 엄마를 보살피며 짐까지 챙겨 들고 이동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수속을 밟는 동안 엄마 옆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내 걱정을 들은 친구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한숨 놓을 수 있었다. 낯선 사람 때문에 생길 ‘긴장’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당일 아침에 큰 눈이 내려서 도로는 엉망이었다. 그 눈길을 걸어서 엄마에게 갔다.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자 엄마는 “나 집으로 가냐?”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을 피하고 짐을 꾸렸다. 퇴원 절차를 밟고 짐을 옮기는 동안 친구가 엄마 옆을 지켰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새 요양병원으로 갔다. 입원 수속을 하고 엄마를 병실로 모셨다. 엄마는 왜 집에 안 가느냐고 따졌지만 큰 소란은 없었다. 엄마를 상대하는 일을 친구한테 미뤘다. 일단 그날은 얼버무리면서 병실을 빠져나왔다.


엄마는 다시 치매 검사를 받았다. 뇌 MRI 검사와 인지 검사였다. 주치의가 자세히 설명해 준 검사 결과의 결론은 경증이 아니라 중증, 그러니까 중간 정도의 치매였다. 인지 검사에서 기억력은 0.1 퍼센트도 되지 않았지만 언어 능력은 70퍼센트 정도 남아 있다고 했다. MRI 검사에서는 뇌가 쪼그라든 형태가 보였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미 경증 단계를 넘어갔다는 진단은 여전히 충격이었다. 주치의는 환자마다 약에 대한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약 처방을 바꾸면서 엄마의 상태를 살필 거라고 했다.


입원 후 며칠 지났다. 내가 계속 엄마 옆을 지킬 수는 없었다. 아버지 장례 후 처리하고 정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여기저기 다녀야 했다. 급히 길을 걷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제 엄마는 단축번호 1로 저장되어 있는 나한테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엄마는 몹시 불안한 목소리로 화장품을 가져오라고 했다. 내일 가져가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면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또 화장품을 가져오라고 했다. 마치 화장품이 절박한 구호물품 같았다. 아무리 엄마를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어도 열 걸음도 걷기 전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병원에 전화를 해서 간병인과 통화했다. 엄마의 휴대전화를 충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엄마는 휴대전화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고, 내가 고민 끝에 엄마의 휴대전화를 해지했음에도 큰 소동은 없었다.


엄마는 위험한 행동도 고집했다. 기침을 많이 하는 엄마에게 의사가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라고 했더니 뜨거운 물을 ‘원샷’하려고 했다. 아무리 옆에서 말려도 별 소용이 없었다. 뜨겁다는 걸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화상 사고를 우려해서 간호사가 밤에는 엄마 병실 앞 정수기의 온수 기능을 꺼 버렸다. 엄마는 병원을 돌고 돌아 반대편에 있는 정수기를 이용했고, 그 정수기마저 온수가 안 나오자 받은 차가운 물을 화분에 버리고 또 버리며 뜨거운 물이 나오길 기다렸다. 다음날 아침 병원 바닥은 화분에서 흘러나온 물이 흥건했다. 이 사실을 나중에 간호사한테서 들었다.


이런 불안과 강박 증상이 치매의 주변 증상이라는 것을 이때는 알지 못했다. ‘치매’라는 용어 자체가 질환이 아니라 증상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뇌 장애가 원인이 되어 기억 장애나 판단 장애 등 중핵 증상이 생기는 반면, 주변 증상은 개인 차이가 크며 심리나 상황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갑자기 바뀐 환경이 엄마를 더 힘들게 해 주변 증상이 심해졌음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앞으로 내리막길만 있을 것 같았다. 평온한 날이 다시 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그저 암담했다.

이전 06화짧은 만남과 헤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