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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Jul 10. 2018

Interview with 태용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기 위한 여정

몇 주 전 스타트업, 테크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태용 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태용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tyzapzi/) 태용님은 영상으로 콘텐츠를 만드시고, 촬영 이전에 아래와 같은 사전 질문지를 작성하게 되었고, 이 콘텐츠를 글로도 남기고 싶어 작성하였습니다.(사전 질문지를 작성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을 들였기에.. :)) 제 자신의 인터뷰를 제 자신이 올린다는 게 부끄럽긴 하지만, 콘텐츠가 제 브런치의 성격에도 잘 맞다고 생각 되어 게제 합니다. 조만간 태용 님의 페이스북에 영상으로도 나올 예정입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디즈니에서 Product Designer로 일하고 있는 한승헌입니다.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세 번째 가진 직장인데요, 첫 번째는 엘지에서, 두 번째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그리고 현재 세 번째로 디즈니에 있습니다. 디자이너로 사는 삶 이외에 Etsy에서 gilbert goods라는 가죽 굿즈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고요, Parenthesis라는 3인조 어쿠스틱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고요, 창발이라는 시애틀 한인 프로페셔널 네트워크 그룹에서 디자인 그룹장을 맡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디자인 관련해서 지난 10개월 동안 브런치에 약 30편의 아티클을 작성하였고 현재는 약 3000명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1. 디자인에 대해서 

Q. 디자이너란 어떤 직업인 가요?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죠. 과학자는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에요. 공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이 공이 왜 떨어지는지, 무슨 속도로 떨어지는지 알고 공식을 만들어서 현상을 사실화시키는 작업을 하죠. 그 반면에 엔지니어는 솔루션을 찾는 사람들이에요. 예를 들어 500톤의 무게를 견디는 다리를 건설한다고 하면 이들은 솔루션을 찾아서 시행해 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죠. 


이런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Oversimplified된 정의를 기준으로 디자이너를 정의해보면, 디자이너는 경험을 프레이밍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엔지니어가 문제를 푸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디자이너는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믿어요. “Product is vivid argument about how we should live our life” 디자이너가 만드는 문제들은 제품화되어서 세상에 나가는 순간 그 제품은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선언을 합니다. 예를 들어 편안한 소파가 제공되는 순간 사용자는 그 소파는 사용자에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서는 공부하는 게 아니라, 쉬는 거야"라고 이야기하고 사용자의 행동을 어느 정도 프레이밍 하게 되죠. 그런 것과 비슷하게 Office chair는 장시간 책상에 앉아 집중할 수 있는 경험을 프레이밍 하고, 교회 의자는 모두가 함께 앉아야만 하는 경험을 프레이밍 합니다. 즉 제품과 사용자는 상호 간에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프로덕트는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요,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은 또 우리가 만들어 내는 프로덕트에 영향을 줍니다.  


여기서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게, 디자인과 기술의 관계입니다. 디자이너들의 입장에 볼 때 이 테크놀로지는 어떤 요리의 재료 같은 거예요. 요리하실 때 재료만 그대로 먹어본 적 있으세요? 요리하지 않고 그대로 먹으면 좀 먹기 힘들어요. 심지어 그 비싼 캐비어도 그냥 먹으면 짜요. 이렇게 순수 재료들이 디자이너의 손에 의해서 양념이 되고, 볶아지고, 삶아지고, 버무려지고, 이쁘게 플레이팅도 해서 사람들이 이 기술들을 맛있게, 편하게 먹을 수 있게 해주죠.  


그래서 더 좋은 요리를 하려면 질 좋은 재료가 필요하고요, 더 좋은 재료를 만들어 내려면 그걸 받쳐줄 수 있는 요리가 있어야 하죠. 그래서 기술과 디자인은 양다리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걸어가려면 왼발, 오른발 한발 한 발씩 움직여야 하잖아요. 기술만 발전해도 한 다리가 머물러 있으니 다리는 찢어질 뿐 앞으로 나갈 수 없고요, 디자인만 발전해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Q. 디자이너란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인가요? 

취향이랑 디자이너는 참 오묘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그게 음악적 취향이 되었든, 패션 취향이 되었든, 맛집의 취향이 되었던, 자기만의 고유한 취향적 색깔을 지니고 있죠. 주위의 디자이너들 보면 항상 뭔가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고, 각자 본인들만이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이런 취향을 어느 정도의 주관성이라고 정의한다면, 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본인의 주관을 디자인 안에 녹여야 해요. 물론 그 주관은 위에서 말한 취향과는 살짝 다른 이야기입니다. 여기서의 주관은 근거가 탄탄하게 받쳐줘야 하고, make sense 해야 해요. 어쨌든 간에 버튼을 어디에다 위치시킬지, 색을 무엇으로 할지 결정하는 사람은 디자이너입니다. 그런데 디자이너의 업무 특성상 다른 이해관계자로부터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버튼 왜 거기다 놓았냐고, 색깔은 왜 그렇게 정했냐고, 글자 크기는 왜 그렇게 했냐고. 그런 질문이 들어오면 본인이 디자인하면서 생각했었던 주관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 주관이 데이터일 수도 있고, 사용자 테스트 결과일 수도 있고, 다른 앱 벤치마킹 결과일 수도 있고, 본인의 감각일 수도 있어요. 그게 무엇이 되었던 그 근거로 타인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해요. 왜냐하면 디자이너 혼자서는 제품을 절대로 출시할 수 없고, 엔지니어 혹은 피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직종이거든요. 엔지니어가 디자인을 코드로 만들어 줘야 하고, 피엠이 전체적인 프로젝트 관리를 해 줘야, 그리고 결국적으로 제품이 제대로 출시되었을 때 디자이너가 만든 디자인은 의미가 생기는 것이지, 내 디자인이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았을 때는 그냥 내 컴퓨터 폴더 안에 있는 파일 하나 일 뿐이죠.  


그래서, 일단은 디자이너라면 어느 정도의 주관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해요. 그 주관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볼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눈이 필요하죠. 근데 이건 머리로 되는 게 아니에요. 직접 다 해봐야 돼요. 앱을 쓸 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디자인적 요소를 봐야 하고요, 직접 경험해서 크리틱을 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해요. 여기서 왜 Navigation drawer를 썼을까, 왜 이 컬러를 썼을까, 왜 이런 레이아웃을 선택했을까, 버튼 스타일은 왜 이런 걸 썼을까, 다른 페이지들 간의 일관성은 어떻게 지켰나, 계속 생각해 봐야 해요. 이런 건 그냥 생각 없이 앱을 쓰면서 훈련되지 않아요. 무언가 디자인된 요소를 사용할 때 항상 생각하고 신경 써서 경험을 봐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셰프는 음식을 맛볼 때 일반 사람보다 훨씬 구체적이에요. 일단 냄새부터 맡고요, 뒤적뒤적거리면서 무슨 재료들이 들어갔는지 살펴요. 그리고 맛을 보고서는 그 맛에 대해서 생각하죠. 어떻게 이 맛을 내었는지, 무슨 재료와 재료들이 혼합돼서 이런 맛을 내는지. 일반 사람들은 그런 거 생각하지 않죠. 그냥 맛있으면 맛있고, 맛없으면 맛없죠. 일반 사람들은 거기서 끝이고, 요리에 크게 관심이 없지 않은 이상 맛의 좋고 나쁨 이상을 생각할 이유도 딱히 없죠. 그것과 마찬가지고 누구나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기는 해요. 그런데 그들은 자세한 이유는 모르죠, 그냥 느낌으로 알 뿐이죠. 하지만 디자이너라면 이게 왜 좋은 디자인인지, 나쁜 디자인인지를 조목조목 이유를 들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앱이나 어떤 디자인된 제품을 쓸 때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해요. 어느 직업에나 어느 정도의 직업병은 필요하지 않겠어요?   


 



2. 한국

Q.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언제 디자이너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으며, Great Designer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공대를 나왔고, 산업공학을 공부했었어요. 2012년도에 미국으로 건너왔고, 그 전에는 계속 한국에 있었습니다. 대학교 1, 2학년 때는 공부를 아예 안 했어요. 산업공학이라는 전공도 어떤 뜻이나 배움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선택한 게 아니라 점수 맞춰서 갔었거든요.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며, 이 공부가 제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기 힘들었었어요. 그때 기타를 너무 좋아해서 실용음악과를 가야겠다고 재수한다 뭐 한다 부모님 속 많이 썩였었죠.  


그러다가 3,4 학년 때 정신 차리고 공부를 좀 많이 했어요. 재수강해서 F 맞은 것들 다 메우고, 밤새서 공부했던 거는 다반사고요. 그때 좀 깨달았죠. 노력하면 결과는 오는구나.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을 앞둔 시점에 다들 한 번씩은 고민해 보잖아요. 대학원을 갈지 취업을 할지. 그때 대학원에 대한 고민이 저한테 살짝, 아주 잠깐 들어왔을 때 디자인 관련 대학원을 찾아보곤 했었어요. 그냥 디자인은 하고 싶은 거, 산업공학은 해야 하는 거라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에서 저는 해야 하는 것을 선택했고, 매번 생산관리, 재고 관리, 물류 관리 이런 부서에만 지원했었어요.  


그러다가 엘지에서 모바일 부서 취업 공고가 났는데, 그때 당시에 UX디자인팀 분위기는 이 전공, 저 전공 많이 뽑아서 시너지를 창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때였거든요. 그때 산업공학 전공 부서를 지원하지 않고, 디자이너로 지원을 했었어요. 디자인 팀에서 다양한 전공을 환영하던 기회를 잘 활용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서는 면접 연습을 무지막지하게 했었어요. 하고 싶을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요. 하루 24시간 그 면접만을 생각하고,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해보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에 디자이너로 잡을 얻게 되었고, 그때부터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Q. 한국 대기업, LG에서 일을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엘지에서 3년 반 정도 근무했고, mobile UI designer로 일을 했어요. 이곳저곳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도움이 되었던 프로젝트는 Optimus 2.0이라는 프로젝트였어요. 그때가 2010년 2011년 정도였던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그때부터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었고, 엘지는 당시에 롤리팝이니 초콜릿 폰이니 피쳐폰으로 정말 잘 나가고 있었거든요. 실적도 정말 좋았고, 사람들도 저희가 만드는 폰을 아주 좋아하였었고요. 그런데 아이폰이랑 안드로이드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판도가 정말 뒤집어졌고, 엘지도 스마트폰 시장에 늦게나마 빨리 진입해야 하는 시기였었죠.  


그때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엘지의 UI는 없었어요. 2009년 당시만 하더라도 구글은 엔지니어링 중심 회사였고, 안드로이드 UI의 사용성은 엉망이었어요. 가이드라인도 없었고, UI도 앱 개발자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었었고요. 엘지에서 만드는 폰에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 엘지의 색깔을 입힐 수 있는 안드로이드 UI를 만들자는 게 목표였었죠.  


리더십에서의 지시사항은 한 가지였어요. 이제까지 피쳐폰에서 했었던 거 없애고 처음 시작한다 생각하고 하라고. 그래서 5주 동안 엔지니어, 피엠, 리서처, 디자이너들끼리 모여서 한 콘셉트를 만들어 냈고, 그걸 리더십에서 좋게 봐줘서 1년 반이 넘는 프로젝트가 되었어요. 아무것도 없이 새롭게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정말 하루하루가 재밌었었죠. 실제 사용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러 많이 돌아다녔었고, 직접 사용해 보면서 많은 디자인적 부분들을 개선했고, 그걸 Optimus 2.0이라는 이름으로 엘지의 색을 입혀서 출시했었죠.  


Q.  석사 유학을 택했나요?    

엘지에서 그렇게 프로젝트를 하면서 저는 제 능력과 지식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고, 거기에서 좀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UX methods나 리서치 방법론 같은걸 전혀 모르니까, 디자인 인사이트들을 뽑아내는데 참 애먹었었어요. 아무래도 공대의 교육을 받고 디자인을 하니 좀 한계가 왔었던 것 같고, 좀 더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왕 할 거면 UX 디자인의 시조 국인 미국에 가서 배우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냥 저는 일을 더 잘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지금 내 지식 가지고는 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런데 이게 사실 실천은 쉽지가 않았어요. 유학을 가려면 GRE 봐야죠, 토플 점수 있어야죠, 포트폴리오 있어야 하죠, SOP 있어야 하죠, 추천서 있어야 하죠, 준비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회사 다니면서 꾸역꾸역 열심히 했어요. 거의 일 년 동안 회사를 6시 정도에 퇴근하면 밥 먹고 매일 도서관에서 밤 11시에 나오고 그랬었거든요.  


그렇게 다 준비를 하고 났는데, 사실 학비도 문제잖아요. 그때 3년 반 동안 엘지 다니면서 모아두었던 돈이 한 7천만 원 정도 있었는데, 그걸 2년 동안 다 썼어요. 심지어 그 돈으로 모자라서 디자인 프리랜 싱을 생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처럼 많이 했었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여름 방학 때 3개월 동안 인턴 하면서 벌었던 돈으로 1년 생활비를 충당했었죠. 하루에 생활비가 15불 정도밖에 안 되는 생활을 2년 했었어요.   





3. 미국

Q. 현지 job 어떻게 구할  있었나요?    

어쨌든 미국에 왔으니까, 미국 학교를 나왔으니까 회사에 취업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이력서 뿌리는걸 취미처럼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시작했어요. 엘지에서 작업했던 것들이 있으니 포트폴리오는 어느 정도 있었거든요. 이력서를 뿌릴 수 있는 모든 채널을 건드려 본 것 같아요. 아는 사람 있으면 꼭 넣어달라고 부탁하고, 웹으로 가고 싶은 회사들 잡 포스팅 사이트 가서 집어넣고, 링크드인 같은데 찔러보고, 학교에서 열리는 잡 박람회 있으면 무조건 이력서 들이밀었어요. 디자이너가 아니라 엔지니어 모집하러 온 회사한테도 이력서 주면서 이거 담당 리쿠르터한테 좀 전해달라 했었죠. 넣은 기업은 사실 셀 수도 없어요. 1년 동안 취미처럼 일상처럼 지원했으니까요. 한국에서는 이게 좀 힘들 수 있는 게, 한국은 기업 지원하려면 자소서 질문도 다 다르고 맞춰서 준비를 해야 하잖아요. 근데 여기는 이력서랑 포트폴리오 셋만 딱 만들어 놓으면 계속 똑같이 사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 군데 지원하는데 무리가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인턴 채용 시즌이 되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한테 연락이 왔어요. 어떻게 이력서가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전화 면접 보고, 시애틀에 초대돼서 면접 보고, 바로 다음날 인턴 합격 소식을 들었죠.  


마이크로소프트 인턴 프로그램이 좋은 게, 풀타임 채용을 전제로 봐요. 그 말은, 인턴이 끝날 때 널 풀타임으로 채용할꺼나, 아니면 안 할 거다는 걸 말해주죠. 그래서 인턴 때 나름 잘 했는지, 풀타임으로 채용이 되었었어요.  

 

Q.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경험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오피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약 3년 반 정도 있었고, 대표 프로젝트로는 워드의 리서처라는 피쳐를 디자인했고요, 오피스 닷컴의 웹 경험을 만드는 일을 했었어요.  


처음에 마이크로소프트에 일 시작했을 때 한국과 미국의 다른 기업 문화 때문에 좀 힘든 게 있었어요. 물론 요즘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예전에 제가 일할 때는 한국의 문화에서는 착하고, 성실하고, 겸손하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착하고, 위에서 시키는 일 군말 없이 깔끔하게 잘 처리해 내고, 성실하고, 회사에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서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겸손하고, 좋은 성과가 나면 '저보다는 팀원들과 과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그렇죠'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죠. 물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한국이 '일 문화'인 거죠. 그런데 미국은 좀 달라요. 오히려 정 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착하게 말을 잘 듣기보다는 “어, 매니저님이 시키는 일의 방식보다는 한번 제 방식대로 알아서 일 진행해 볼게요"라고 본인의 주관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요, 성실하게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결과물을 잘 뽑아내는 사람이어야 하고요, 겸손하기보다는 본인의 성과를 잘 챙기고 자기가 한 일들을 잘 포장해서 남들에게 알려야 해요. 


이런 다른 직장 문화 때문에 저도 모르게 약간 위축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 뭔가 다를 거야. 내가 모르는 뭔가 혹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거야" 그 생각 때문에 많이 방해받았었어요. 일 하면서 가끔은 밀어붙여야 할 때도 많거든요. 근데 그 생각 때문에, 내가 뭔가 틀렸거나 엇나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밀어붙이지를 못하겠는 거죠. 근데 어느 순간 되니까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나 자신을 불편한 상황에 자꾸 내어 던지다 보니 훈련이 되더라고요. “떠들어도 괜찮아"라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만든 디자인이니까요. 혹시나 안 좋은 소리나 내 디자인에 대한 반대 의견을 듣게 되지는 않을까 많이 고민했었는데, 디자인 리뷰라는 게 사실 반대 의견을 듣기 위한 거잖아요. 다들 찬성하는 디자인을 가지고 리뷰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도 없죠. 그걸 깨닫고 나니 "내 생각은 올곧이 말하되, 타인의 피드백은 겸허하게 듣자"라는 생각이 굳게 자리 잡았어요. 

 

Q. 디즈니에서의 경험    

여기 시애틀에서 디자인 프로토타입 핑 툴인 프레이머 밋업이라는 걸 한 달에 한 번씩 해요. 각자 일하면서 프레이머로 뭘 어떻게 만들었는지 발표하고, 서로 티칭도 해주고 그런 밋업 이거든요. 몇 월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디즈니를 다니는 디자이너가 프레이머로 한걸 발표하는 자리였어요. 그분의 발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휴대폰 앱에 들어가는 모션을 애프터 이펙트에서 바디 무빙이라는 플러그인을 써서 제이손으로 출력해낸 다음에, 로티를 써서 프레이머에 연동해가지고 라이브러리화 시켜서, 코드 몇천 줄을, 5줄로 줄였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건 뭐지, 신세계다' 하면서 그분이랑 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는 코 워커 사이가 되었고요. 아무튼, 그때 디즈니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거기 가면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는 많이 배우고 싶었고요, 많이 성장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디즈니가 그런 장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희 팀은 Disney parks and resorts digital이라는 팀이고요, 팀 이름처럼 사람들이 Parks나 Resort에서의 디지털 경험들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Disneyland, 엘에이, 홍콩, 상해, 파리, Disney world, Disney cruise line, Disney vacation club, Shop Disney 여기서 쓰는 대부분의 디지털 경험들은 저희 팀에서 디자인한 거라고 보셔도 돼요. 대표적인 디지털 경험은 앱이죠.  


요새 대부분의 앱의 목적이 이 앱을 좀 더 써주세요, 좀 더 많이 켜주세요, 오래 머물러 있어 주세요 같은 게 목적이잖아요. 예전엔 시간이 돈이다 라는 말이 있으면 지금은 관심이 돈이다 라는 말이 된 것처럼요.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많이 사용하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거든요. 당연한 말이죠. 시간과 공을 들여서 앱을 출시했는데,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고 좋은 반향을 일으키기를 바라죠. 


그런데, 저희 앱의 목적은 좀 달라요. 보통 User Experience라고 하는데, 저희는 Guest Experience라고 해요. 즉 앱의 사용자 차원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디즈니 랜드, 디즈니 월드 안에서의 손님의 차원으로 바라보고 앱을 넘어선 조금 더 총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사람들이 휴대폰을 덜 보고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것이지, 앱이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사람들이 디즈니 랜드를, 월드를, 피지컬 경험을 즐기다가 가는 것이고, 디지털 경험들은 그걸 서포트할 뿐이죠. 잃어버리기 쉬운 티켓 종이 대신에 앱 간단히 열어서 디즈니랜드 입장하고, 호텔에서 카드키 대신에 앱 열어서 호텔 방문 열고, 앱으로 놀이기구 기다리는 시간 체크할 수 있게 해서 루트 짤 수 있게 해 주고, 놀이기구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캐릭터 이용해서 증강현실 게임 같은 거 만들고, 그런 거죠. 기술 중심이 아닌, 아날로그의 경험이 중심인 거죠.  


그 반면에 디즈니는 기술 중심 기업이 아니라, Intellectual property, 즉 캐릭터와 무형 자산으로 기업을 이끌어 나가고 있고, 디자인에서도 어떻게 하면 디즈니만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해서 엄청 많이 고민하죠. 캐릭터들을 어떻게 하면 앱에 녹여내서 되게 딜라이트 한 경험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앱에서 나오는 모션들의 특성을 잘 잡아내서 어떻게 하면 디즈니만이 할 수 있는 모션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요. 그래서 디자인하면서 항상 그런 디즈니적인 순간들을 찾아내려고 많이 노력해요.  


 



4. 마무리

Q.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서 디자이너로서 학습하고 살아남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면?    

요새는 디자인 툴의 춘추 전국 시대예요. UX 디자인이 디자인의 주류로 떠오르게 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그래픽 디자인을 할 때 사용하던 포토샾이나 일러스트레이터의 독재가 끝났다고 볼 수 있죠. 하루가 멀다 하고 디자인 툴이 계속 생겨나고 그걸 학습하는 건 사실 디자이너 본인의 몫이죠. 여기는 무슨 학원이 있거나 과외가 있는 게 아니라서 본인이 알아서 커리큘럼 짜고 배워야 해요.  

 

어느 정도 여러 가지 툴을 배우다 보면 새로운 툴을 익히기가 생각보다 수월해져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에 3개 국어를 마스터 한 사람이 1개 국어밖에 못 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수월한 것처럼요. 예를 들어, 일러스트레이터에서 펜툴이나 사각형 툴들을 알면 스케치에서 그 툴은 똑같이 있어요. 모션 그래픽에서 타임라인과 키 프레임의 개념을 이해하면 애프터 이펙트를 쓰던 다른 모션 그래픽 툴을 쓰던 훨씬 수월해져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방법'을 잘 익히면 새로운 게 나오더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결국에 툴은 툴이에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사실 있거든요. 그 디자인 안에 담겨 있는 생각이 중요해요. 디자인을 보고 포토샾으로 만들었니, 스케치로 만들었니 라고 물어볼 사용자는 아무도 없고, 신경 써서도 안돼요. 그냥 툴은 디자인을 만들기 위한 통로 같은 거죠. 국물을 접시에 담기 위해서 국자가 필요한 것처럼요. 다 만들고 나서 남는 건 디자인에 담긴 생각이에요.


 Q. Great Designer 가는 계획대로  되고 있는  같나요어때요? 

그런 말이 있어요. 바보가 바보라서 바보가 아니라, 자기가 바보인지 모르기 때문에 바보라고. 본인이 바보인 줄 알면 왜 노력하지 않겠어요? 바보인 줄 모르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고 바보의 상태로 남아 있는 거죠.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저는 절대로 Great designer가 되지 못할걸 알고 있어요.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저는 Great designer가 되었다고 인정하고 만족하는 순간 더 이상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Great designer가 되는 길만 있을 뿐, 어떤 목적지나 종점은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그냥 계속 배워 나가는 게 재밌어요. 혼자서 조작 조작 온라인 강의 찾아서 배우는 게 재밌고요, 약간 롤플레잉 게임에서 스탯 하나씩 올리듯이, 오늘은 모션 디자인 스킬 스탯 하나 찍었다, 뭐 이런 식으로요.  

 

Great designer가 될 계획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없어요. 계획을 세우는 순간 그건 나를 가두는 것이 될 테고요, 그것대로 될 리가 없거든요. 저는 어릴 때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미국에 가야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계획대로는 아녔더라도 지도를 수정해 나가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표면 위에 떠 있는 계획들을 세우기보다는 한 단계 깊은, 인간 보편적인 미덕 같은 거 있잖아요, 성실성, 사람에 대한 소중함, 모든 것에 대한 존경심, 타인에 대한 배려, 친절함, 현재에 대한 충실함, 시간의 유한성의 인지, 이런 것들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런 조금은 더 근본적인 것을 지켜 나가다 보면 당연히 현실에 충실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레 '아, 오늘도 괜찮은 하루였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잠들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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