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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Nov 25. 2020

핀잔을 들은 구글 디자이너

Don't tell me, show me

처음 구글에서 일을 시작할때였다. 내 첫 팀은 구글 뉴스 팀이였고, 내 매니져는 나에게 기대를 잔뜩 걸고 있는 모습이였다. 


매니져와 1:1로 업무 지시를 받는 시간. 우리 팀은 구글 뉴스 앱을 디자인 하는 팀이였고, 매니져는 나에게 이야기 했다. 


"길버트야. 헤드라인 탭을 한번 디자인 해봐"


당시 구글뉴스 앱은 총 4개의 탭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중 하나인 헤드라인 탭을 나에게 해보라는 말이였다. 그 말은 즉슨, 앱의 25%를 나에게 맡기겠다는 말이였다. 구체적인 지시도 없었다. 너를 전적으로 믿을테니, 거기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도 펼쳐보고, 디자인도 해보고, 피드백도 받아보고 내가 알아서 잘 해보라는 말이였다. 그리고 거기서 의사결정이나 다른 팀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 혹은 매니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 되는 부분에서는 서슴 없이 말해보라고 하고서 그 미팅은 끝이 났다.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워낙에 큰 디자인 프로젝트인데, 그냥 나에게 전적으로 나를 믿고 맏기는 것에 대한 부담도 조금 있었고,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부담도 조금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게 구글의 업무 지시 방식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구글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정말 많은 좋은 말들과 혁신적인 무언가 구글의 디자이너들은 협업을 다르게 하고 매번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들고 와서 그 누구보다도 멋진 디자인을 뽑아낼 것만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구글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를꺼야.', '구글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실력은 아마 상상도 못하도록 멋지지 않을까?', '구글에서 일하는 방식은 다른 기업과는 다를꺼야' 라는 부푼 마음을 가지고 그 프로젝트는 내 손안에 들어와 굴러가기 시작하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함에 앞서 헤드라인 탭이 수술이 필요하다는건 알겠는데, 어디서부터 수술을 시작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제대로 된 진단부터 시작해야 할 판이였다. 그래서 관련 논문들을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존에 했었던 관련 UX리서치 자료들도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유저들은 헤드라인 탭에서 어떤 정보를 보기 원하는가. 유저들을 헤드라인 탭으로 오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UX적인 장치들이 필요할 것인가. 사람들은 왜 뉴스를 읽는가. 헤드라인 탭에서 유저들이 원하는 정보를 보여주시 위해서는 어떤 디자인이 가장 효율적인가. 읽고 또 읽었다. 최대한 디자인을 하기 이전에 자료들을 내 머릿속에 정리하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컷었다. 또한 그게 내가 디자인을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 했다.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조사한 다음에 완벽한 디자인을 뽑아내는 방식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매니져와 미팅을 했다. 

"그래, 길버트, 그동안 프로젝트는 좀 진행 해봤어?"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나도 이젠 유능한 구글 디자이너 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내가 모아논 자료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왜 뉴스를 읽는지, 뉴스를 읽는 습관은 무엇인지, 거기서 헤드라인 탭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등등. 30분이 넘게 자료들을 정리한것을 보여주고 나서 매니져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디자인 시작한건 없고?"

"아, 네. 자료 좀 정리하고 이해한 다음에 디자인 시작하려구요. 그래야 완벽한 디자인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매니져는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 주었다. 

"자료 정리한거 좋아. 그런데 말이야, 이 급변해 가는 상황 속에서 과연 우리는 하나의 변하지 않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답이라는건 존재할까? 우리가 어쨋든 여기서 열심히 디자인 해서 이게 답이라고 생각 한 다음에 출시하지만 그게 답이 아닌 경우도 있고, 답일 경우도 있겠지. 그런데 문제는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야. 이론은 어느정도 도움이 되긴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것은 디자인이지, 이론은 그저 디자인을 뒷받침 할 뿐이고. 
정답을 찾으려 하지마. 정답은 없어. 단지 시도들만이 있을 뿐이야. 그리고 그게 성공이면 좋겠지만, 실패여도 괜찮아. 실패는 실패의 원인을 알 수 있으니까. 그 원인을 아는것은 어느것보다도 큰 도움이 되고, 우리가 가장 많이 배우는때는 성공할때가 아니라 실패할때야. 성장은 성공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실패에서 나오는 거라고. 
그래서, 이런 이론들을 정립화 한 다음에 디자인을 하려 하기 보다는 디자인을 하면서 이런 이론들을 쳐다보고 왔다 갔다 하면서 하는게 중요할 것 같애. 다음 미팅때는 너가 한 여러 버전들의 디자인을 한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미팅이 끝나고 나는 한대 얻어맞은 듯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내 디자인 방식, 이론을 정립하고 나서 완벽한 디자인을 만들기, 는 적어도 구글에서는 통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 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다른 어느 조직에서 통할 수 있을까. 그리고서는 예전에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한마디 말이 생각 났다. 


"Don't tell me, show me" (말하려 하지 말고 보여줘)


나는 완벽한 디자인을 만들고 싶었다. 구글에 와서 처음 맡은 프로젝트이기도 했고, 구글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와 동급 레벨의 디자인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 했다. 그 완벽 주의는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는 자세일까? 아니, 그 이전에 '완벽한 디자인' 이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그 미팅이 끝나고 나서는 나는 내 디자인을 하는 방식을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려 하지 말고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디자인을 말하려 하는 것 만큼 어불성설인 경우가 없다. "이쪽에는 버튼이 크게 들어갈꺼구요, 여기는 경고 문구와 함께 유저의 주의를 끌 디자인을 만들 생각 입니다. 이 페이지는 유저의 의도대로 동작하는 페이지 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 미팅에 있는 모든 사람은 머릿속에 디자인을 그리지만, 모두가 다른 디자인을 그린다. 그리고 그 미팅의 본질은 흐려진다. 디자인은 타인에게 전달되기 힘들어지며, 그 누구의 동의를 얻기도 힘들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결코 말로 디자인하려 하지 않는다. 픽셀로, 프로토타입으로 디자인의 의도를 전달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 그 디자인이 완벽하지 않은 디자인이라고 괜찮다. 디자인은 누구에게나 크리틱 되어지기 마련이며, 그 크리틱을 얻을 수 있는 디자인이라는 사실 하나로 그 디자인은 가치를 발하게 되어 있다. 


혹시 본인이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보자. 그 완벽주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본인의 안위 혹은 안심하기 위한 장치는 아닌지. 그리고 단 한번이라도 완벽한 디자인을 만들어 낸 적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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