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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Dec 29. 2020

디자이너는 왜 혼자서 공부할 수 있어야 하는가

디자이너의 공부법 #1.

나는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입시 미술이란 것은 해보지도 않았고, 공대에 입학하여 예체능 혹은 그림과는 거리가 먼 교육과정을 밟아 왔다. 그러나 지금 학교를 졸업하고 10년이 넘게 지난 이 시점에서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은 '디자인'이 되었다. 학부때 산업 공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공부를 게을리 한것도 아니였다. 디자인을 해야만 하겠다는 소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였다. 단지 나는 디자인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였을 뿐이였다. 


내가 현재 가장 잘 하는 것이 디자인이 된 이유는 딱 하나다. 혼자서 공부하는 법을 어느정도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첫 직장을 디자인에 대한 지식이 얉은 상태에서 UI designer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으니, 야전에 던져진 생명체처럼 나도 내 자신의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는 법을 찾아야 했다. 처음 업무를 시작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샾은 전혀 몰랐고, 그림이라곤 전혀 그려보지 않았던 디자이너 였다. 따라 잡아야 할 스킬들, 지식들 등등, 혼자서 학습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였다. 이 야전에 던져진 혼자서 디자인 공부를 해서 생존법을 익혀야 한다는 경험은 그때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큰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다. 사람은 힘들때 가장 많이 발전하다고 했었었나, 이때 익혔던 생존법은 그 이후로도 두고 두고 써먹을 수 있는 나의 스킬이 되었다. 


내가 디자인 필드에 발을 담구기 시작하고 그 이후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디자이너가 쓰는 툴들도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샾에서 스케치라는 툴을 거쳐 지금은 피그마라는 툴을 쓴다. 예전에는 미적 감각이 전무한 디자이너도 괜찮은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interaction design에서 미적감각까지 요구된다. 예전에는 정적인 디자인만 잘 할 수 있으면 괜찮은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Interaction을 보여줄 수 있는 모션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디자이너가 코딩까지도 해야 한다는 말도 몇 년 전부터 업계에 떠돌아 다니고 있다. 이런 많은 변화들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학교를 다니던 10년 전에 이런 변화를 예측하고 새롭게 요구되는 스킬들을 대비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단언컨데,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미래에는 어떤 스킬들이 요구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유연성이다. 이 유연성은 다른말로 하면, 변화에 당황하지 않고, 그 변화에 필요한것들을 유연성있게 대처할 수 있으면 된다. 미래에 어떤 물고기를 잡아야 할지 모른다면,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아서 어떤 물고기든 잡을 수 있게 자신을 만들면 된다. 그게 내가 말하는 디자이너는 혼자서 공부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논점의 요지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종종 이런 질문들을 한다. '어떤 툴을 공부해야 하나요?', '디자이너가 코딩을 배우기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 어떤 코드를 쉽게 배울 수 있을까요?' 내 대답은 보통 그렇다. '대세를 따라라'. 주위 디자이너들이 가장 많이 쓰는 툴, 내 팀 혹은 내 회사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는 툴을 배우면 된다. 그리고 그 툴이 오래가지 않고 몇 년 후에 변경이 되면 그때 또 대세를 따라가면 된다. 그때마다 어떻게 매번 새로운 툴들을 배우냐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디자인 툴' 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기에, 기능의 위치 혹은 방식만 다를 뿐 사실 다 같은 툴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두 번째 새로운 디자인 툴을 배울때는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그 다음의 툴을 배울때는 시간이 훨씬 단축 되어가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야기 하는 '혼자 하는 공부법'을 서서히 터득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혼자서 배워나가는 학습법이 디자이너 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전파되기를 바란다. 이런 배움의 태도는 나에게 큰 지적 재산을 안겨 주었고,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까짓꺼 배우면 되지' 라는 깡다구를 키워 주었다. 그리고 디자인 외적인 부분에서도 관심사가 생기더라도 그걸 놓치지 않고 서슴없이 배움을 시작하는 내 자신을 관찰할 수 있었다. 


카네기 멜론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는 와중에 time, motion and communication 이라는 모션 그래픽 수업을 들었었다. 모션 그래픽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면서,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모션 그래픽 툴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수강신청 조건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저 할줄 압니다' 라고 할줄 아는 척을 해가면서 수업을 신청해 들었을때였다. 나는 수업을 하면서 모션 그래픽 툴인 After effects를 어느정도는 가르쳐 줄꺼라 예상 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오산이였다. 그 교수님은 70대가 넘는 원로 교수님이였는데, 단 한번도 After effects라는 툴을 켜보지 않은 교수님이였다. 단지 영상을 보고 영상에서 전달하는 메세지가 어떤지에 대한 피드백을 줄 뿐, '그, After effects에 어떤 어떤 플러그인이 있는데, 그거 사용하면 그런 모션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라고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역시 모든 After effects의 테크닉적인 부분을 인터넷에서 찾아 알아서 혼자 배워야 했다. 


어떻게 생각 하는가. 교수님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 하는가? 교수님이 어느정도는 툴을 다루는 테크닉적인 부분을 커리큘럼에 넣었어야 했는가? 아니다. 나는 교수님의 지도 방법이 맞다고 생각 한다. 마지막 결과물 영상이 나왔을때, '이거 After effects로 만들었어, Final cut으로 만들었어?' 라고 물어볼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저 영상에서 전달하는 메세지만이 중요할 뿐, 툴을 저 너머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수면 위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님은 핵심인 좋은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생각 하는지를 가르켜 줘야 하지, 툴을 다루는 손기술에 집중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라면 혼자서 알아서 배워나가야 하는게 많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툴들이 나오고, 그 툴들을 익히는 건 온전히 내 책임이다. 이제는 디자이너가 그래픽적인 부분도 봐야 하고, 인터랙션도 모션으로 만들어야 하고, 심지어 코딩까지 해야 한다고 하면서 디자이너의 책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누구에게 가르쳐 달라고 할 것인가. 새로운 스킬을 익히고, 변화되는 산업계에 발을 맞춰 나가는건 온전히 내 책임이고, 혼자서 진행해야 하는 과제이다. 


자, 이제 디자이너가 왜 혼자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지 어느정도 설득이 되었다면, 다음으로 디자이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공부들을 어떤 방법들로 접근 해야 하는지 살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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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디자이너의 공부법' (가제) 이라는 책의 일환으로 집필된 글입니다. 

책은 2021년 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피드백을 댓글로 달아주시면 원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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