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행정의 시대, 정치가 시작해야 한다

Aven’s Insight Vol.03 효율과 책임

by Gildong

AI는 이미 행정의 안쪽으로 들어왔다.
공문 초안, 회의록 요약, 민원 응답 —
이제는 행정의 기본 단위가 사람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되어가고 있다.


정부는 효율을 말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속도보다 ‘판단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다.


AI가 일을 대신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책임까지 대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변화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책임 구조가 재편되는 일에 가깝다.


일본 정부는 ChatGPT를 활용해 공문 초안을 자동 작성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정책 데이터 분석용 AI 플랫폼 ‘GovTech’을 운영하고,
영국은 공공기관 전용 Copilot을 도입하며
“AI가 작성한 문서는 반드시 사람이 검증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판단 과정의 한 축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은 이제 ‘결정하는 사람들’의 영역을 넘어,
AI가 제시한 선택지 속에서 판단하는 사람들의 시대에 들어섰다.


AI의 강점은 패턴을 읽는 능력이다.
민원 응답, 예산 편성, 문서 자동화, 데이터 분석 —
이 모든 것이 패턴의 집합이다.


그래서 자동화는 필연이다.
하지만 인간의 판단은 점점 결정의 끝부분으로 밀려나고 있다.


AI가 제시한 수많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승인하는 일.
이제 공무원의 ‘판단’은 종종 ‘확인 절차’로 축소된다.


문제는,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는다는 것이다.
AI의 판단이 잘못되어도,
비판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에게 향한다.


결국 행정의 무게중심은
‘결정의 속도’에서 ‘판단의 책임’으로 이동하고 있다.


AI가 일의 효율을 높이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효율은 신뢰의 대체제가 될 수 없다.
행정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이 지탱하는 신뢰에 있다.


AI 행정이 성공하려면
인간이 남겨야 할 판단의 세 가지 축을 잊지 말아야 한다.


1. 가치 판단 — 무엇이 옳은가를 결정하는 일
2. 맥락 판단 — 지역과 현실의 조건을 읽는 일
3. 책임 판단 — 결과에 응답하는 일


AI는 데이터를 분석할 수는 있어도
이 세 가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AI는 효율의 도구일 뿐,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AI 시대의 행정은 일의 효율이 아니라, 판단의 깊이로 평가받는다.
인간의 판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그 판단이 닿을 수 있는 범위와 책임의 무게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행정 현실은 이미 AI보다 앞서
‘책임 없는 판단 구조’로 움직여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막론하고,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추진할 때마다
수많은 위원회가 만들어진다.


위원회는 다양한 의견을 모으는 장점이 있지만,
그 결정은 종종 ‘익명의 합의’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흩트린다.
공무원은 판단을 위원회에 위임하고,
위원회는 다시 “전문가의 판단이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한다.
그 결과, 아무도 결정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굳어졌다.


AI가 이런 구조 속에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AI는 판단을 대신하지만, 책임을 대신하지 않는다.
즉, 이미 흐려진 책임 구조가 기계의 논리로 더 공고해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행정은 기술보다 더 강한 균형 감각과 책임 의식을 필요로 한다.
AI가 효율을 담당한다면,
공무원은 그 효율이 어떤 기준 위에서 작동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그 역할을 놓치면, AI는 행정을 빠르게 만들겠지만,
그만큼 책임 없는 결정의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AI가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 공무원의 역할은 달라진다.
이제 공무원은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설계하고, 그 판단을 검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는 효율을 담당하지만,
공무원은 여전히 균형과 신뢰의 감각을 지켜야 한다.
AI가 빠진 행정은 효율을 잃고,
인간이 빠진 행정은 신뢰를 잃는다.


미래의 행정은 속도가 아니라 균형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AI가 효율을 책임질 때,
공무원은 신뢰를 책임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Aven’s Insight

행정의 자동화는 ‘효율’이 아니라 ‘책임’의 구조를 시험한다.
정치가 책임을 회피하면, 행정은 방어적으로 변한다.
책임의 구조를 바로잡는 일은 공무원이 아니라, 정치가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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