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오토모 가츠히로가 예언한 3가지 멸망
<메모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대포의 거리>는 기괴하다. 스토리랄 게 없다. 대포로 무장한 도시의 하루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줄 뿐이다.
아침 6시 기상 나팔이 울리면, 온 가족이 일어나 총통(대통령)의 초상화에 경례한다. 아빠는 거대한 포탄을 장전하러 공장에 가고, 엄마는 포탄 제조 공장으로, 아이는 학교에서 탄도학을 배운다.
도시의 모든 기능은 오직 '발사'를 위해 존재한다.
가장 소름 끼치는 점은 이것이다. 하루 종일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을 내며 대포를 쏘아대지만, 단 한 번도 포탄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적이 누구인지, 전쟁이 왜 시작됐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쏜다. 어제도 쏘았으니 오늘도 쏠 뿐이다.
이 회색빛 도시, 2025년의 '테헤란로'나 '여의도'와 너무 닮지 않았나?
당신의 하루를 복기해 보자. 아침 알람에 맞춰 눈을 뜨고, 만원 지하철(수송선)에 몸을 싣고, 사무실(포대)에 도착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고, 엑셀 칸을 채우고, 전화를 돌린다.
애니메이션 속 아빠가 온몸에 기름을 묻혀가며 거대한 포탄을 장전하듯, 우리는 거북목이 되어가며 보고서라는 포탄을 장전한다.
저녁이 되면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며 생각한다. "오늘도 열심히 일했어."
그런데 묻고 싶다. 당신이 오늘 쏘아 올린 그 보고서는 도대체 어디로 날아갔는가?
그게 회사의 매출을 올렸는가? 누군가의 삶을 개선했는가? 아니면 그저 결재라인이라는 허공을 날다가 '반려'되거나 '문서함'에 처박혔는가?
우리는 노동의 '과정'에만 집착할 뿐, 노동의 '결과'와 '의미'로부터는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 소외'의 21세기 버전이다.
<대포의 거리> 뉴스에서는 매일 떠든다.
"오늘 우리 이동 포대가 적의 이동 도시를 격파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그 적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적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공포일 수도 있다.
우리 회사들도 똑같다. "경쟁사가 치고 올라옵니다!", "지금이 위기입니다!", "글로벌 경제 전쟁입니다!"
경영진은 매일 위기론을 설파하며 직원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 그래야 군말 없이 야근하고, 시키는 대로 포탄을 나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이 지정해 준 '적'을 향해 대포를 쏜다. 내가 쏘는 이 대포가 진짜 우리 가족을 지키는 것인지, 아니면 윗분들의 연봉과 주가를 방어하기 위한 것인지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의 아이러니는 시민들이 이 삶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포를 쏘지 않는 날을 불안해한다. "쏘는 행위" 자체가 그들의 유일한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은퇴한 직장인들이 왜 급격히 무너지는가? 평생 '발사'하는 법만 배웠지, '왜 쏘는지'를 고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포(직함)가 사라지니, 인간으로서의 자신은 텅 비어버린 것이다.
"바빠 죽겠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당신. 혹시 그 바쁨을 훈장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바쁘지 않으면 내가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져서, 일부러 무의미한 일들을 만들어내며 자신을 착취하고 있는 건 아닌가?
<대포의 거리>의 마지막 장면, 소년은 침대에 누워 꿈을 꾼다.
"나도 커서 아빠처럼 훌륭한 포수가 될 거야."
이것은 희망찬 결말이 아니라, 비극의 대물림이다. 목적 없는 노동, 질문 없는 삶은 그렇게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
당신은 계속 쏠 것인가? 아니면 포신을 돌려, 진짜 겨눠야 할 곳이 어디인지 확인할 것인가?
[Next Episode] 제9화. "복지는 늘려줘"라면서 "왜?"는 묻지 않는다 : 제3부. 폐기와 각성 (The Awakening) 시작.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정작 시스템이 멈추는 것은 두려워하는 이중성. 맹목적인 복종과 소시민적 욕망의 콜라보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