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의 몰락과 구조화된 가난에 대하여
"자산은 늘었는데, 왜 삶은 더 팍팍해졌을까?" 많은 이들이 느끼는 이 인지부조화는 착각이 아니다. 당신의 아파트 호가(Nominal Price)가 올랐다고 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다. 단지 당신이 쥐고 있는 원화(KRW)라는 자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주식, 비트코인, 금값, 강남 아파트가 동시에 오르는 기이한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냉정해져야 한다. 이것은 기업 혁신이나 실물 경기의 호황 덕분이 아니다. 경기는 바닥을 기는데 자산 가격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상은 성장의 증거가 아니라, 화폐 시스템이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다.
원리는 단순하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너무 많이 찍어냈다. 팬데믹 이후 미국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돈줄을 죄는 동안, 한국은 경기 부양을 명목으로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공급이 폭증하면 가치는 폭락한다. 이것은 경제학의 기초다. 그 결과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25% 이상 추락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자. 당신의 아파트나 주식이 최근 올랐다고 치자. 그런데 원화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다면? 당신은 달러 기준으로 제자리거나 오히려 가난해진 것이다. 숫자가 커졌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사이버머니'처럼 불어난 숫자에 속아 실질적인 구매력을 도둑맞고 있다.
이 비극의 핵심은 유동성의 불공정한 분배, 즉 '캔틸런 효과(Cantillon Effect)'다. 중앙은행이 수도꼭지를 틀면, 그 돈은 가장 먼저 시중은행과 자산가들에게 흘러간다. 이들은 싼 이자로 자산을 선점해 가격을 올려놓는다. 반면, 기업은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고, 고용은 늘지 않는다. 결국 월급쟁이와 서민은 자산 가격이 다 오른 뒤에야 도착한 '인플레이션'이라는 흙탕물만 뒤집어쓴다. 월급은 생산성에 묶여 제자리인데, 자산은 풀린 돈을 타고 날아가는 '양극화의 지옥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제 인정해야 한다. 은행 예금에 돈을 넣어두고 "이자가 붙으니 안전하다"고 믿는 것은, 불타는 집에서 "에어컨이 나오니 시원하다"고 자위하는 것과 같다. 지금의 랠리는 축제가 아니라, 화폐 가치 하락에 대한 공포가 만들어낸 '자산으로의 도피(Flight to Assets)'다.
원화라는 측정 도구는 고장 났다. 숫자의 환상에서 깨어나라. 당신의 자산이 얼마나 올랐는지가 아니라, 그 자산으로 10년 전과 똑같은 양의 쌀과 금을 살 수 있는지 물어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지금 합법적으로 약탈당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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