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의 몰락과 구조화된 가난에 대하여
대한민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G7 회의에 초청받고 K-컬처가 세계를 휩쓰니, 우리가 진짜 세계의 중심인 줄 착각한다. 하지만 경제의 기초체력(Fundamental)을 냉정히 뜯어보라.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고, 자원은 전무하며, 수출이 막히면 즉사하는 전형적인 '소규모 개방 경제'다.
그런데 정치는 마치 미국이나 북유럽의 복지 국가라도 된 양 행동한다. 돈이 없으면 찍어내고, 기업이 힘들면 보조금을 뿌리고, 표가 필요하면 현금을 살포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선진국 병(Advanced Economy Disease)'이다. 부자가 되기도 전에 부자의 씀씀이부터 배운 꼴이다.
정치가 경제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가장 극명한 사례는 산업 정책이다. 반도체는 '전기'와 '물'을 먹고 자라는 괴물이다. 1초의 정전도 허용하지 않는 전력망과 막대한 공업용수가 생명줄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권은 기업의 생존 조건보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을 앞세운다. 물도 부족하고 전기도 비싼 논두렁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지으라고 등 떠민다. TSMC가 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24시간 돌아갈 때, 한국 기업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인허가와 민원 처리에 골든타임을 허비한다. 정치가 기업을 돕기는커녕 모래주머니를 채우고 있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에너지 자살골'이다. "친환경", "탈원전"이라는 정치적 구호 아래 저렴한 에너지원을 포기한 대가는 혹독했다. 한국전력의 수십조 원 적자는 결국 산업용 전기요금 70% 폭등으로 돌아왔다. 철강, 석유화학 등 전기를 많이 쓰는 기간 산업들의 원가 경쟁력은 박살 났다. 현대제철이 해외 이전을 고민하고 뿌리 산업이 문을 닫는다. 에너지 원가를 정치 논리로 결정하는 제조업 국가, 이는 경제적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가장 위험한 덫은 '기축통화국 코스프레'다. 정치인들은 "정부는 돈을 써야 한다"며 재정 확대를 외친다. 미국은 그래도 된다. 달러를 찍어내면 전 세계가 받아주니까. 하지만 한국은 원화를 찍어내면 환율이 폭등하고 자본이 탈출하는 나라다.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빚을 내서 '민생 지원금'을 뿌리자는 주장은 나라를 베네수엘라나 튀르키예로 만들자는 소리와 같다. IMF가 "한국의 부채 증가 속도는 너무 빠르다"고 경고장을 날린 이유다.
선진국 병에 걸린 정치인들은 "따뜻한 복지",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말한다. 달콤하다. 하지만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분배는 사상누각이다. 기업의 팔을 비틀어 지방으로 보내고, 미래 세대의 세금을 당겨와 표를 사고, 에너지 원가를 무시하는 나라에서 혁신은 피어날 수 없다.
지금 한국 경제는 늙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늙어가는 경제에 보약을 주는 게 아니라, 스테로이드(빚)를 주사하며 "아직 팔팔하다"고 국민을 속이고 있다. 이 포퓰리즘의 파티가 끝나면 남는 것은 텅 빈 곳간과 폭락한 원화, 그리고 떠나버린 기업들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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