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의 몰락과 구조화된 가난에 대하여
2023년 초, 정부는 가용 가능한 모든 정책 화력을 쏟아부어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을 살려냈다. 규제 해제, 대출 지원, 보증 확대. 미분양 대란을 막았으니 작전은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훗날 역사는 이 사건을 한국 경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기록할 것이다. 전투 하나를 이기기 위해 국가의 모든 자원을 소진했고, 결과적으로 경제 구조 개혁이라는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둔촌 일병 구하기'는 단순한 미분양 해소 작전이 아니었다. 시장 전체에 "버티면 정부가 살려준다"는, 자본주의에서 절대 보내서는 안 될 잘못된 신호(Signal)를 쏘아 올린 결정적 순간이었다.
자본주의의 대원칙은 냉혹하다. 투자가 실패하면 손실을 보고, 무리하게 빚을 낸 기업은 망해야 한다. 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시장은 건전성을 회복한다. 하지만 정부는 둔촌주공을 살리면서 이 원칙을 짓밟았다. 건설사와 금융권은 "대마불사(Too Big To Fail)는 살아있다"며 환호했다. 그 결과, 2022년에 마땅히 정리되었어야 할 부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장들이 구조조정 대신 '좀비 모드'로 전환했다. 이자도 못 내는 시행사들이 정부의 추가 지원을 기대하며 4년을 버텼고, 그 사이 부실 규모는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불어났다.
더 근본적인 비극은 '아파트 공화국'의 성장 모델 자체가 붕괴했다는 점이다. 지난 40년간 대한민국 중산층의 공식은 단순했다. "열심히 일해서 아파트를 산다 → 재건축으로 자산 가치가 폭등한다 → 중산층이 된다." 이 공식이 내수를 돌리는 엔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엔진은 꺼졌다. 자재비와 인건비 폭등으로 재건축 분담금은 억 단위를 넘어섰다. 재건축은 이제 '로또'가 아니라 '입주 폭탄'이다. 원주민은 쫓겨나고 조합은 파산한다. 중산층을 찍어내던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 선 것이다.
서울 강남만 바라보는 사이 지방은 이미 지옥도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끊긴 돈줄은 지방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와 텅 빈 상가들은 금융권 장부에만 '정상 자산'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 실제 가치는 '0'에 수렴하는 악성 부실이다. 정부가 서울 집값을 떠받치느라 유동성을 쏟아붓는 동안, 지방 경제와 중소 건설사들은 조용히 괴사(Necrosis)하고 있다. 이들이 무너지면 그 독소는 결국 서울의 금융기관으로 역류할 것이다.
청구서는 이미 도착했다. 우리는 선택해야 했다. 집값을 잡고 환율을 지킬 것인가, 집값을 지키고 환율을 포기할 것인가. 정부는 후자를 택했다. 부동산 가격 유지를 위해 금리를 억누르고 돈을 푼 대가가 바로 지금의 고환율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가 부동산 거품을 지키기 위해 원화 가치를 희생양으로 삼았음을 간파했다. 그래서 원화를 팔고 떠나는 것이다. 명목 가격(Nominal Price)은 유지될지 몰라도, 달러로 환산한 당신의 집값은 이미 추락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둔촌 일병'을 구해낸 대가로 받은 참혹한 청구서다.
[다음 글] 제6화.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의 복지를 흉내 낸 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