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달러에 팔려나간 50년의 혁명
인스타그램 속의 평행우주
테헤란의 한 카페, 2005년생 청년이 필터링을 뚫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긴다. 화면 속에는 1970년대 테헤란 거리가 흐른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활보하고, 록 밴드가 공연하며, 화려한 카지노가 불을 밝히던 시절. 팔레비 왕조의 흑백 사진들은 디지털 보정을 거쳐 '힙(Hip)'한 감성으로 재탄생했다. 이들에게 과거는 박물관에 갇힌 역사가 아니다. 지금의 잿빛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소환한 가장 강력한 ‘평행우주’다.
혁명의 자녀들이 혁명을 부수다
이슬람 공화국이 수십 년간 공들여 키운 교육 세대가 역설적으로 체제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 되었다. 1979년 혁명을 겪지 않은 Z세대는 정권이 가르친 ‘팔레비의 폭정’이라는 교과서를 믿지 않는다. 대신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찬란했던 황금기’를 신봉한다. 이들이 외치는 “팔레비가 돌아온다”는 구호는 왕정 복고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훔쳐 간 현재의 질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실존적 거부 선언이다. 낭만화된 과거는 현재의 정당성을 파괴하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되었다.
디지털 고고학이 만든 분노의 메커니즘
Z세대가 ‘겪어보지 않은 과거’에 열광하는 이유는 세 가지 사회심리적 결핍에서 기인한다.
세뇌를 이긴 알고리즘: 정권은 수십 년간 학교에서 팔레비 왕조를 ‘미국의 꼭두각시’로 교육했다. 하지만 유튜브와 틱톡은 당시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과 문화적 개방성을 고화질 영상으로 증명한다. 국가의 선전(Propaganda)이 디지털 데이터의 물결 앞에 무력화된 것이다.
7달러 대 1970년대의 호황: 2026년의 청년들은 ‘월 7달러’라는 모욕적인 보조금에 분노한다. 이들에게 스마트폰 속 1970년대 오일 붐 시기의 풍요는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 ‘우리가 당연히 누렸어야 할 빼앗긴 권리’로 인식된다.
문화적 갈증의 해방구: 히잡 착용 의무와 종교적 통제에 숨이 막힌 청년들에게 과거의 개방적 풍경은 그 자체로 해방구다. 이들은 팔레비 시대를 ‘정치적 독재’가 아닌 ‘문화적 자유’의 시대로 재정의하며, 현재의 신권 정치를 ‘문명적 퇴행’으로 규정한다.
냉정한 중간 점검: 기억의 함정
과거를 낭만화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을 동반한다. 1970년대 팔레비 왕조 역시 비밀경찰 ‘사바크(SAVAK)’를 동원한 잔혹한 탄압과 극심한 빈부격차를 안고 있었다. 청년들이 소환한 것은 실제 역사가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해 편집된 ‘가상의 낙원’이다. 그러나 대중 운동에서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그들이 과거가 더 좋았고 믿는 순간, 현재의 정권은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약탈적 패권이 소비하는 ‘향수’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청년들의 이 ‘낭만적 노스탤지어’를 영리하게 이용한다.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이란판 버전인 "Make Iran Great Again"을 부추기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주겠다는 메시지를 위성을 통해 주입한다. 약탈적 실용주의 시대에 과거의 기억은 체제를 전복하는 효율적인 연료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세대는 과거를 무덤에서 파내 현재를 공격한다. Z세대의 스마트폰 속에서 되살아난 팔레비의 망령은, 이제 이슬람 공화국의 성벽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공성망치가 되어 돌아왔다.
[한 줄 질문] 과거의 망령이 현재를 무너뜨린 자리, 그 빈칸에 쓰일 이름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