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버린 자리에 달러가 들어선다 - 9

7달러에 팔려나간 50년의 혁명

by Gildong

Ep 9. 워크 어라운드(Walk-around): 고래 싸움에 대처하는 기술


아부다비의 비밀 회동

2026년 봄, 아부다비의 한 호텔 연회장에는 성좌기도, 오성홍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국의 반도체 설계자, 일본의 정밀 소재 전문가, 그리고 UAE의 자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패권국이 강요하는 ‘양자택일’의 시험지를 찢어버리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망을 구축하기 위해 모였다. 이름하여 ‘워크 어라운드(Walk-around)’. 거대 고래들이 정면충돌하는 길목을 피해, 기술과 실용으로 우회로를 뚫으려는 중견국들의 처절하고도 영리한 생존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중립은 약자의 언어, 불가결성은 강자의 언어

우리는 오랫동안 "미국이냐, 중국이냐"는 질문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2026년의 약탈적 패권 시대에 이 질문은 함정이다. 어느 편에 서든 결국 ‘약탈’의 대상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중견국들의 생존 공식은 모호한 ‘중립’이 아니라 압도적인 ‘불가결성(Indispensability)’이다. "우리가 없으면 너희의 미사일도, AI 서버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기술적 실력을 바탕으로, 패권의 힘을 역이용하는 기술이 바로 워크 어라운드의 본질이다.


패권의 틈새를 파고드는 세 가지 우회술

고래들의 질식할 것 같은 압박 속에서 중견국들이 선택한 ‘제3의 길’은 다음과 같다.

기술 카르텔의 형성: 한국의 파운드리,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독일의 기계 공학이 결합한 ‘기술 소국 연합’은 패권국의 공급망 통제에 대응하는 강력한 헤지(Hedge) 수단이다. 미국이 장비를 막고 중국이 원자재를 묶어도, 이들끼리의 ‘기술 교환’이 성립하는 한 패권국도 이들을 함부로 약탈할 수 없다. 여기에는 국가를 넘어선 기업 간의 '상호 인질화' 구조가 핵심이다.

비국가적 금융 허브의 활용: UAE와 같은 중동의 자본국들은 미국과 중국의 규제를 우회하는 ‘공식 질서의 빈틈’이자 ‘기술의 전시장’ 역할을 자처한다. 달러 패권의 눈을 피해 실리콘과 에너지를 교환하는 이 거대한 지하 통로는 약탈적 패권의 감시망을 무력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플랫폼 주권의 확보: 스타링크가 국가의 인터넷을 대체하듯, 중견국들은 패권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클라우드와 위성망을 공동 구축하기 시작했다. "너희의 시스템을 쓰지 않아도 우리는 연결된다"는 선언은 패권국이 쥔 ‘스위치’의 힘을 약화시킨다.


냉정한 중간 점검: 위험한 줄타기

워크 어라운드 전략은 극도로 위험한 줄타기다. 미국은 이를 ‘배신’이라 부르고, 중국은 ‘기회주의’라 비난한다. 패권국의 눈에 이 연합은 자신들의 질서를 뒤흔드는 ‘반란군’으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미 재무부는 워크 어라운드에 참여하는 기업들에 대한 세무 조사를 위협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기술적 실력이 압도적이지 않다면, 우회로는 막히고 독자 노선은 고립으로 끝날 것이다.


"우리가 없어도 살 수 있겠어?"라고 물어라

이제 한국의 전략은 "미국과 얼마나 친한가"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우리 없이도 살 수 있는가"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약탈적 실용주의의 시대에 ‘의리’를 찾는 것은 자살 행위다. 오직 ‘쓸모’만이 당신의 주권을 지켜준다. 고래들이 서로의 목을 조르는 동안, 우리는 그들의 산소호흡기를 쥐고 있어야 한다. 자율성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를 질식시킬 수 있는 기술적 독점력에서 나온다. 등 터지는 새우가 될 것인가, 아니면 고래들의 생존을 결정하는 ‘심해의 지배자’가 될 것인가. 워크 어라운드는 그 선택의 시작이다.


[한 줄 질문] 패권의 협박 앞에서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당신만의 산소호흡기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