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묻고 알고리즘이 답하다

빵과 서커스, 그리고 AI가 그리는 보편적 고소득의 미래

by Gildong

당신이 매일 앉던 책상, 당신의 이름이 박힌 명패, 그리고 당연하게 여겼던 하루의 일과들이 사라지는 건 생각보다 금방일지도 모릅니다. 기술 보고서 한 장 분량의 코드면 충분하니까요. 2026년을 사는 우리는 일론 머스크가 말한 ‘보편적 고소득(Universal High Income, UHI)’이라는 장밋빛 미래와, 내 자리가 통째로 지워질지 모른다는 불안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습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오랜 금언이 우리를 계속 압박하지만, 여기서 잠시 멈춰 서서 이 거대한 흐름을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라 믿어온 ‘근면 성실’이라는 미덕이, 실은 산업혁명이라는 짧은 시기가 만들어낸 유통기한 있는 가치였다면 어떨까요?


천년제국 로마의 풍경은 이 거대한 변화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과 같았습니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 시민들에게 돌아온 건 역설적이게도 ‘대량 실업’이었습니다. 정복지에서 쏟아져 들어온 값싼 노예들은 오늘날의 AI와 다름없었죠. 지치지도 않고 일하는 데다 숙련도까지 높은 노예들에게 밀려 자유 시민들은 농장과 건설 현장에서 쫓겨났습니다. 도시로 몰려든 실업자들의 분노가 체제를 위협할 때, 로마가 내놓은 건 ‘일자리 창출’ 같은 공허한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쿠라 안노나(Cura Annonae)’, 즉 국가 차원의 무상 배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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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당시 로마인들의 태도입니다. 그들은 배급받는 걸 구걸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상들이 피 흘려 일군 문명의 당연한 결실이자,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로 여겼죠. 노동은 노예의 몫이었고, 시민의 본분은 정치를 논하고 문화를 즐기는 ‘오티움(Otium, 창조적 휴식)’에 있었습니다. 근면 성실이 최고의 덕목이 된 건, 공장이 멈추지 않아야 했던 근대 자본주의가 주입한 가스라이팅의 결과일 뿐입니다.


하지만 로마의 배급제는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누가 그 신뢰를 보증할 것인가'라는 숙제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죠. 황제들은 돈이 모자랄 때마다 은화에 구리를 섞어 가치를 떨어뜨렸고, 내전으로 보급로가 끊기자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로마에 없었던 결정적인 해답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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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류는 제국의 변덕이나 황제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 ‘기술적 신뢰’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가치를 지키는 비트코인은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현대판 순금화가 되었고, 제국 전역에 밀가루를 실어 나르던 로마의 보급로는 XRP 같은 디지털 유동성 네트워크로 진화했습니다. 이제 신뢰는 낡은 동전에 새겨진 황제의 얼굴이 아니라, 바꿀 수 없는 코드와 촘촘한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그릇에 담기고 있습니다. 국가라는 틀을 넘어 전 세계로 부를 실시간으로 옮겨주는 거대한 디지털 혈관이 생긴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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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프라 위에서 '보편적 고소득' 시대가 열린다면, 인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가장 잔혹한 시험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노동’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삶의 의미를 찾는 고민을 미뤄왔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게 지상 과제였던 시절은 차라리 단순했습니다. 하지만 결핍이 박물관에나 갈 유물이 된 세상에서, 인간은 비로소 ‘도구로서의 나’가 아닌 ‘존재 자체로서의 나’를 마주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쓸모 있는 도구'가 되는 법이 아니라, '존재만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로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에게서 노동을 걷어내면, 무엇이 남습니까?” 무상 배급은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문명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종착역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태어난 기계가 아니라, 존재하기에 아름다운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예술가입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멈춘 곳에서, 비로소 인간의 진짜 역사는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