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평화헌법의 종언과 보조금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밤이 내려앉은 도쿄의 스카이라인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저 꺼지지 않는 불빛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지난 10여 년간 일본을 지배했던 건 2011년의 그 아픈 기억, ‘탈원전’이라는 거대한 트라우마였습니다. 신재생에너지가 그 빈자리를 채워줄 거라는 기대도 컸죠. 하지만 2026년 오늘, 다카이치 사나에의 일본은 그 오랜 금기를 정면으로 깨부수고 있습니다. 다시금 뜨겁게 달궈진 원자력 엔진을 국가라는 기계의 심장에 다시 박아 넣으려는 모양새입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선택은 꽤 차갑고 현실적입니다.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날씨에 따라 출렁이는 에너지에 나라의 운명을 다 맡길 수는 없다는 판단이겠죠. 그녀는 차세대 원전이라 불리는 SMR(소형 모듈 원자로)과 핵융합 기술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는 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불을 밝히는 문제를 넘어 보입니다. 원전을 가동해 전력 단가를 지금보다 30% 이상 낮추고, 그 저렴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일본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을 아예 뿌리부터 다시 세우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흥미로운 건 원자력을 전기를 만드는 기계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원전에서 나오는 열과 전기를 이용해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이 수소를 다시 조선소나 제철소의 연료로 공급하는 거대한 순환 시스템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탈탄소 규제를 오히려 일본 제조업의 진입 장벽으로 바꿔버리려는 노련한 설계로 보입니다. 물론 핵연료 공급망이나 폐기물 처리 같은 까다로운 숙제들이 여전하지만, 일본은 '에너지 없는 주권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듯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꽤 지독할 정도로 실용적입니다. "환경을 위해 산업을 희생하기보다, 산업을 살릴 환경 기술을 발명하겠다"는 식이죠. 이런 태도 앞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한때 원전 강국이라 자부했던 우리가 정쟁과 담론의 늪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웃 나라는 제조업의 기반을 닦기 위해 다시 원자로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에너지 주권이 흔들리는 국가의 미래는 결국 타국이 쥔 플러그 하나에 명줄이 좌우될 뿐이라는 사실을, 일본의 저 집요한 행보가 다시금 일깨워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