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평화헌법의 종언과 보조금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우리는 꽤 오랫동안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잡아먹는 시대’를 찬양해 왔습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바뀌고, 실체 없는 데이터가 부의 척도가 되던 시절이죠.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은 견고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2026년 오늘, 우리는 그 화려한 화면 너머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반도체가 없으면 서버가 멈추고, 배터리가 없으면 자동차가 서며, 조선소가 멈추면 전 세계의 물길이 막힙니다. 가벼웠던 디지털의 시대가 가고, 다시금 ‘물리적 실체(Physical)’라는 무거운 하부 구조의 시대가 돌아온 것 같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일본의 행보를 보며 느낀 ‘피지컬의 역습’입니다. 다카이치 정부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곳은 화려한 메타버스가 아닙니다. 거친 쇳소리가 들리는 조선소, 수천 미터 아래의 어두운 심해, 그리고 거대한 냉각 팬이 돌아가는 원자력 발전소입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똑똑해져도 결국 그것을 담아낼 ‘몸(Body)’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본은 누구보다 먼저 깨달은 듯합니다. ‘피지컬 AI’의 시대를 선점해 다시금 물질의 지배권을 쥐겠다는 전략인 셈입니다.
왜 하필 지금일까요? 미·중 패권 전쟁이 공급망 전쟁으로 번지면서, 이제 ‘무엇을 만드는가’보다 ‘누가 만드는가’가 훨씬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웨어는 복제할 수 있지만, 수십 년간 현장에서 쌓아온 제조 공정과 물리적인 인프라는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 없는 국가의 성벽이 됩니다. 쇳물과 기름 냄새가 이제는 그 어떤 화려한 외교 언어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기술이 곧 안보이고, 제조 능력이 곧 국가의 위신이 된 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꽤 뼈아픈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를 가진 나라지만, 과연 그것들을 하나의 전략적인 의지로 묶어서 운영해 본 적이 있었나 하고 말이죠. 일본이 물리적 토대를 재건하며 다시 ‘제조업 강국’의 자존심을 세우려 할 때, 우리의 공장들은 여전히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제는 단순히 기계를 몇 대 더 들이는 차원을 넘어서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에너지와 자원, 제조와 AI를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돌릴 수 있는 우리만의 전략, 즉 ‘피지컬 OS’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