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의 일본은 왜 다시 칼을 드나 - 8

80년 평화헌법의 종언과 보조금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by Gildong

감정은 ‘아니오’라는데 생존은 ‘예’라고 답해야 하는 모순


서울의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을 켠 이들의 눈에 일본 총선 압승 소식이 쏟아집니다. 누군가는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고, 또 누군가는 익숙한 우려를 쏟아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배워온 일본은 ‘극복해야 할 과거’이거나 ‘경계해야 할 이웃’이었습니다. 하지만 2026년의 현실은 우리에게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비정한 숙제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일본이 역사라는 지뢰밭이었다면, 지금의 일본은 ‘공급망’이라는 더 촘촘하고 위험한 지뢰밭으로 우리를 불러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마주한 역설의 실체입니다. 정서적으로는 가장 멀어질 명분이 충분한데, 경제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깊게 얽혀야 하는 모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다카이치 정부가 밀어붙이는 보조금 전쟁은 우리 제조업의 근간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반도체나 에너지 분야에서 그들과 손을 잡지 않고서는 글로벌 표준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줍니다. 감정은 ‘아니오’라고 외치는데, 생존을 위해서는 ‘예’라고 답해야 하는 상황인 셈입니다.


실제로 수소나 암모니아 프로젝트처럼 양국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일들이 산업 현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의 자본과 한국의 실행력이 결합하지 않으면 중국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절박함이 우리를 ‘적대적 공생’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일본과의 협력 그 자체는 아닐 겁니다. 진짜 무서운 건, 그들이 설계한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그저 ‘고성능 하청 기지’로 굳어지는 일입니다. 일본이 전체 운영체제(OS)를 제공하고 우리가 그 위에서 돌아가는 앱(App) 하나에 머문다면, 우리의 주권은 다시금 기술의 이름으로 저당 잡힐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에겐 감정적인 분노보다는 ‘전략적 실용주의’라는 냉정한 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안보는 우리 스스로 설계하되, 산업은 필요에 따라 공동으로 구축하고, 그 안의 표준만큼은 우리가 정의하겠다는 원칙 말입니다. 일본이 공들여 쌓은 기술의 성벽 안에 우리만의 지분을 확보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을 잃지 않는 영리함이 절실합니다. 지뢰를 피해 저 너머의 주도권을 쥘 설계도가 없다면, 우리의 동행은 서로의 손목을 비틀어 잡는 위태로운 행진에 그칠 수 있습니다.


결국 2026년의 지뢰밭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샌드위치의 압박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양쪽의 빵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단단한 ‘핵심 내용물’이 되는 것 아닐까요? 일본이 칼을 갈며 제조 문명의 표준을 세우려고 할 때, 우리는 그 성문을 여닫는 열쇠를 쥐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