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의 일본은 왜 다시 칼을 드나 - 9

80년 평화헌법의 종언과 보조금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by Gildong

우리는 무엇을 ‘제조’하며 살아남을 것인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만드는 일’의 가치가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때는 낡은 산업으로 치부되던 제조업이 이제는 국가의 안보와 생존을 결정짓는 최전선이 된 것이죠. 하지만 지금의 제조업은 우리가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단순히 싼 인건비를 찾아 공장을 옮기는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고도의 지능과 정밀한 시스템이 결합한 ‘하이테크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보조금도 결국은 이 핵심 제조 능력을 자국 영토 안에 묶어두려는 절박한 시도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무엇을 제조해야 할까요? 일본이나 미국처럼 엄청난 자본력을 앞세워 ‘보조금 경쟁’에 똑같이 뛰어드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체급이 다른 상대와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건 승산이 낮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모델은 반도체 산업의 TSMC가 아닐까 싶습니다. 설계는 남이 하더라도, 세상이 원하는 그 어떤 복잡한 시스템도 가장 완벽하게 현실로 구현해내는 능력 말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국가 파운드리 전략’의 핵심입니다. 공장의 주인이 누구냐보다, 그 공장이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 전략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정도의 기둥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선, 누가 설계하든 우리 시스템에선 즉시 생산할 수 있도록 ‘구조적인 표준’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다음은 숙련공들의 현장 감각을 알고리즘으로 바꿔서 어떤 공장에서도 균일한 품질을 뽑아낼 수 있는 ‘제조 운영체제’를 갖추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반도체부터 방산, 원자력까지 관통하는 우리만의 ‘범용적인 제조 능력’을 쥐어야 합니다. 기계가 정답을 낼 때 그 답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인간의 감각을 시스템에 녹여내는 작업인 셈입니다.


이제 ‘메이드 인 코리아’는 단순히 물건을 만든 장소를 뜻하는 라벨을 넘어, 가장 믿을 만한 ‘제조 플랫폼’의 이름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설계는 전 세계 어디서 이루어지든, 그 결과물을 가장 완벽하게 물리적 실체로 바꿔주는 나라가 되는 것이죠. 보조금 전쟁의 성벽이 아무리 높더라도, 우리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제조 시스템’을 서비스하는 파운드리 국가가 된다면 생존을 넘어 새로운 주도권을 쥘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나라를 넘어, 제조업의 새로운 표준인 ‘피지컬 OS’를 전 세계에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