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패권은 이란의 피로 유지된다 (3)

당신의 일상을 제물로 삼아 장부를 새로 쓰는 자들

by Gildong

제3장. 40년의 설계, 중동은 왜 끝없이 폭발하는가


1996년 워싱턴, 미 의회 연단에 선 서른일곱 살의 베냐민 네타냐후. 그의 목소리는 차가울 만큼 냉정했습니다. 그는 ‘이란이라는 실존적 위협’을 세계 안보의 절대적인 공적으로 정의하며 미국의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동맹국 지도자의 열정적인 호소로 들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맞추는 정교한 설계의 시작이었습니다.


중동의 폭발은 결코 우발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치밀하게 쌓아 올린 지경학적 건축물입니다. 국가 간의 동맹은 종종 한쪽의 절박한 공포가 다른 쪽의 전략적 이익으로 번역될 때 가장 단단하게 결합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지역 패권과 실존적 불안을 제국의 핵심 안보 과제로 치환하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이 교묘한 결합 속에서 미국의 총구는 서서히 방향을 틀었습니다. 제국은 스스로 정의를 집행한다고 믿고 있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타인의 오랜 숙원을 대리 집행하는 ‘유급 용병’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흔히 중동을 ‘천년의 종교 전쟁’이라는 낡은 라벨로 분류하며 고개를 저어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 전쟁의 진짜 연료는 신앙이 아니라 철저한 ‘실리 계산서’입니다. 네타냐후의 정치적 생존과 제국의 군산복합체 이익, 그리고 무너지는 달러 패권을 붙들려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지점에서 포성이 울립니다. 40년 전 뿌려진 가스라이팅의 씨앗이 마침내 전쟁이라는 비정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이 전장은 예루살렘에서 쓰인 대본을 워싱턴의 자본으로 제작한 거대한 ‘극장’과 같습니다. 제국은 자신이 무대 감독이라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누군가 설계한 각본 위에서 정해진 비극을 연기할 뿐입니다. 설계자는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다만 제국의 손을 빌려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제거하고, 그 천문학적인 청구서를 전 세계 동맹국들의 장부로 조용히 밀어 넣을 뿐입니다.


국제 정치에서 우연히 터지는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저 불길은 갑자기 번진 것이 아니라, 40년 전부터 정교하게 쌓인 장작더미에 이제야 불이 붙은 것에 불과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목격하는 파멸은 예고 없는 재앙이 아닙니다.


다만 설계된 시간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