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설계한 효율이라는 이름의 통제
월요일 아침 10시, 알람 대신 스마트폰의 짧은 진동이 잠을 깨운다. 화면에는 '보편적 고소득(UHI) 입금 완료' 메시지가 떠 있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플랫폼 포인트나 재난지원금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을 하지 않아도, 누구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통장에는 매달 넉넉한 숫자가 찍힌다. 배고픔이 사라진 거리에는 안락한 미소가 가득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생각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만드는 풍요가 인간을 비로소 자유롭게 할 것이라 믿어왔다. 틀렸다. 자본이 제안하는 공짜 풍요는 자선이 아니라, 가장 고도화된 '문명적 마취제'다. 배부른 짐승은 사냥법을 잊는다. 시스템이 생존을 완벽하게 책임지는 순간, 인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고민할 이유를 잃어버린다. 고민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시스템이 제공하는 정교한 콘텐츠와 소비만이 남는다.
풍요는 당신의 지갑을 채우고, 당신의 핸들을 뺏는다.
통제는 강요되지 않는다. 다만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안락함을 통해 완성될 뿐이다. 기계가 모든 가치를 생산하고 인간에게 그 부스러기를 나누어주는 구조에서, 인간은 더 이상 '주체'가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전락한다. 배고픔이라는 가혹한 결핍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스스로 결정할 필요가 없는 달콤한 무력감이다. 시스템은 당신에게 먹을 것을 주는 대신, 당신의 '판단하는 근육'을 서서히 퇴화시킨다.
이제 권력은 몽둥이를 휘두르지 않는다. 대신 더 달콤한 사료를 내민다. 사람들이 풍요에 취해 잠든 사이, 자본은 세상의 규칙을 바꾸고 지능의 방향을 결정한다. "무엇을 먹을까"를 걱정하지 않게 된 인간은, 역설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할 동력을 잃어간다. 주는 대로 먹고, 보여주는 대로 보며, 정해진 길로만 움직이는 존재에게 '자유'라는 단어는 거추장스러운 수식어일 뿐이다.
진정한 빈곤은 통장의 잔고가 바닥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경로를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의지가 바닥나는 것이 진짜 빈곤이다. 굶주림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락함이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지만, 배부른 자는 결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나갈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풍요는 인간을 해방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 판단할 필요가 없는 상태로 길들이는 가장 우아한 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