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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Feb 27. 2023

다시, 처음부터 다시, 첨! 첨! 부터 다시

Writer's block Diary: 29일째


이적과 김진표를 기억하시는지?

패닉의, 또는 패닉 음악의 오래된 팬이라면 이 글의 제목에서 곧장 그들의 노래 한 대목을 연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https://youtu.be/8F5Y2c7hKqQ


난 그 콧대를 눌러버리고 싶었어
내 손으로 꺾어버리고 싶었어
하지만 바보같이 끄덕하며
깊이 깊이 깊이 내몸이
가라앉는걸 느끼는 수 밖에
나는 없어 아무것도 없어
언제든 죽을 날이 멀게만 느껴져
내게 왜 이런 내게 왜 이런
내게 내게 내게 이런 내게 왜! 



<다시 처음부터 다시> 는 가사를 곱씹다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종류의 노래는 아니다. 오히려 치기와 울분으로 가득한, 듣기에 따라서는 자신의 미성숙함을 토해내기에 바쁜 중2병 노래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다.


왜 인생이 요모양 요꼴인지, 나를 조롱하는 듯한 신에게 반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말은 누구나 다 한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담은 작품들은 주로 힙합이나 락, 댄스와 같은, 소위 청춘을 불 싸지르는 음악 장르에서 아주 공고한 띠를 형성하고 있다. 세대를 거듭하며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이 다시 성인으로 진입하는 한 이 띠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작금의 유행가 내지는 대중가요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몇몇 뛰어난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가사의 내용이 다음의 넷 중 하나에 해당한다: 


1) 너무 억울하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왜 이런 억울함을 겪어야 하나? 나만 빼고 다 뒤져라!

2) 내가 제일 잘 나가고, 제일 예쁘고, 숨은 진주이며, 그러니까 늬들은 다 알아서 기도록 해라.

3) 너를 너무 사랑한다. 또는 네가 날 매우 사랑하는 걸 안다. 그러니까 우리 사랑 영원해~

4) 네가 배신했다. 무척 나쁜 XXX! 너를 완전히 잊어주겠어. 언젠가 너보다 더 잘나갈 테니!


너무 러프하게 뭉뚱그린 것 아니냐고? 


이 말의 진위가 의심스럽다면 지금 당장 요즘 유행하거나, 인기를 끌고 있는 힙합이며 락, 댄스 장르의 가사를 유심히 음미해보시길 바란다. 


(놀랍지 않은 사실이지만, 나는 이런 류의 음악도 무척 좋아한다. 비록 가사는 저렇(?)지만 뛰어난 멜로디와 중독성 있는 리프로, 나도 모르게 둠칫 두둠칫 손가락 리듬을 타게 된다. 때로는 머리를 텅텅 비우고, 단지 가벼워지기 위해 가장 단순한 즐거움이 필요하다.)


그다지 놀랍지 않은 사실을 하나 더 덧붙이자.


당신이 막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이라면 정확히 위의 사지선다에 머무르는 글을 쓰게 되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 할지라도 처음에는 분명히 이런 류의 글을 통과의례처럼 쓸 수밖에는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인간의 정신에 성숙도의 차이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성숙을 위해서는 마치 대청소를 맞아 집안의 모든 묵은 먼지를 털어내듯 꼭 털어내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런 묵은 먼지는 물론 한 순간에 털어낼 수가 없다. 또한 헌 먼지를 털어내도 새로운 먼지가 내려앉는다. 유치한 발상, 방어적인 태도, 적 내지 다른 존재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혐오는 본능적인 것이기에 그 뿌리가 깊다.


세상에서 가장 바꾸기 어려운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


어느 시점에서 우리가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가기 위한 여정을 떠나기로 굳게 다짐해도, 우리의 다짐은 여러가지 이유로 언제나 좌절되기 십상이다.


사실 인간의 고정관념과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가정과 학교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어린이에서 성인이 되는 그 모든 하루하루, 1분 1초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관념들은 그 유치함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명을 유지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다시 처음부터 다시>의 세계 속에 머무를 수도 없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다시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니까. 그 과정 속에서 필요한 건 어쩔 수 없는, 약간의 성숙이다.


이 와중에 조금이라도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뭘까?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도를 닦는 게 먼저일 순 없다. 그랬다간 평생토록 아무도, 그 누구도 작품이라는 걸 만들어내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면 뭐가 남을까?


https://youtu.be/jfRxD3oLiQY



모두 어딘가로 차를 달리는 길
나는 모퉁이 가게에서
담배 한 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
들고 길로 나섰어
해는 높이 떠서 나를 찌르는데
작은 달팽이 한마리가
어느새 다가와 내게 인사하고
노랠 흥얼거렸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정말 놀라운 것은, 아래의 패닉 1집 수록곡 목록을 보면 드러나는 사실이다. 


바로 <달팽이>와 <다시 처음부터 다시>가 하나의 앨범에 나란히 묶여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치뽕짝 어리광과 감성충만 진지함이 공존할 수도 있다는 사실. 심지어 감성충만 진지함 다음에, 배반하듯이, 역행하듯이 유치뽕짝 어리광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패닉 1집 PANIC (1995.10.01 발매) 수록곡

01. Intro : Panic Is Coming [intro]
02. 아무도
03. 너에게 독백
04. 달팽이
05. 다시 처음부터 다시
06. 왼손잡이
07. 더...
08. 기다리다
09. 안녕
10. Outro : 다시 처음부터 다시


인간 정신은 페스츄리처럼 복잡 다단하고, 얕으면서도 깊으며, 성실하면서도 동시에 불성실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한데 뒤엉키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붙잡는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미숙함을 초월해 무언가 멋진 문장을 쓸 수도 있다.


그러니 해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을 것이다.


저런 사지선다에 해당하지 않는, 기존의 관념을 깨부수는 음악 가사는 늘 존재해온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조금이라도 더 성숙한, 멋진 음악을 되풀이해 들으며, 또 조금이라도 더 산뜻한 작품들을 되풀이해 읽으며, 조금이라도 덜 후진 생각을 하는 것.


실패할 것을 겁내거나, 성공할 것에만 몰두하지 말고 그저 한 자 한 자 써내려가기.


그러다보면 언젠가 달팽이와 같은 가사를 토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오늘도 남몰래 품어볼 따름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투비컨티뉴드에서, 투 비 컨티뉴드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tobe.aladin.co.kr/t/gil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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