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아웃사이더가 나의 정체성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들려드리는 나의 이야기

by 영영

나로 말하자면 학창 시절부터 사람 등급 감별사가 장래희망이라도 되는 양, 이 사람 저 사람을 마음속으로 평가하고 다녔다.

직업에 귀천은 없고, 사람은 누구나 존귀하다지만, 내가 평가했을 때 만만한 사람이면 편안하게 대했고, 어려운 사람이면 쩔쩔맸다. 무의식 중에 하는 행동이라 고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게 가장 평가하기 쉬운 사람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나 자신이다. 다른 사람을 볼 때는 그들이 나에게 보여주는 잠깐의 일면밖에 볼 수 없지만, 나를 볼 때는 나라는 사람의 새하얀 부분부터 새까만 부분까지 전부 볼 수 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인다. 그리고 사람 등급 감별사 지망생인 내가 평가하기에… 나는 가장 낮은 등급이었다.

자기 평가가 낮아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사람이 두려워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내 학창 시절은 항상 잿빛이었다. 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 더 나쁘게 말하자면 그냥 찐따였다.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진 건지, 자존감이 낮아서 아웃사이더가 된 건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현실이 괴로워서 가상으로 도피했다는 점이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타쿠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교실에선 매일 말없이 혼자 앉아있거나, 엎드려 자는 척을 한다. 예민해서 학교에선 잠들지도 못하는 주제에. 주위 학생들의 귓속말이나 웃음소리에 흠칫하고, 아웃사이더가 아닌 왕따가 될까 봐, 손짓 하나 발짓 하나에 몸이 벌벌 떨렸다.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무도 날 환영하지 않는 이 교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모두가 적대적으로 느껴졌고, 동시에 모두의 관심이 절실했다.

한 번 낮아진 자기 평가는 높아질 줄을 몰랐다. 저 내핵까지 파고들어 그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날 봐주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을 때면 눈치가 보여 미칠 것 같았다. 남들이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았다. 사실은 누구도 내게 관심 없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 사실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상담을 받으며 울진 않았다. 울면 꼴불견이니까. 의사 선생님의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웃으며, 조심조심 말하며, 그러면서도 소심한 태도에 의사 선생님이 불편하시지는 않을까 두려워했다.

이러한 자기 평가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부터였다. 나는 결국 휴학을 택했는데,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친구가 다니는 알바처에 지원을 했다. 사실 내가 알바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면접에서 더듬거리다가 탈락, 아니면 일하다 사고를 쳐서 해고, 단순히 일을 너무 못해서 해고…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너무도 쉽게 알바에 합격해 버렸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자 억지로라도 말을 해야 했다. 내 소심한 성격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소리쳤다. 작은 일에도 감사했고, 사과했다. 누구도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며, 서서히 말을 해도 된다는 자신감이 붙어갔다.

휴학이 끝난 뒤, 나는 대학에서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처음으로 친구와 식사를 함께 했다. 처음으로 친구와 교정을 걸었다. 처음으로 쉬는 시간에 혼자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이러한 일련의 경험으로 나는 자신을 조금씩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 번 낮아진 등급 평가가 쉽게 오르는 것은 아니라서, 여전히 날 미워했다. 나아졌지만, 미워했다. 나아졌음에도, 질책했다….

이것이 정말 맞는 길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와 분리되어 살아갈 수 없다. 나의 나쁜 면, 싫은 면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나의 ‘오타쿠 아웃사이더’라는 딱지조차 사랑하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랑하고 싶다고 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나처럼 스스로를 오랫동안 미워한 사람은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정해 줄 수는 없을까. 내가 미워한 그 사람의 존재를. 미움받는 그 사람을 안아주지는 못하더라도, 멸시하진 않을 수 없을까.

나는 여전히 그것이 어렵다. 여전히 스스로의 못난 부분이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학교로 돌아가고, 친구를 사귄 것처럼…

언젠가 그 딱지마저 사랑스럽게 보일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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