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동료가 나에게 독기 가득한 메시지를 불쑥 보냈다.
“이번에 만든 인사 정책 잘 이해도 안 가고 공감도 안 되네요. 그쪽이 올린 공지 하나 때문에 내가 얼마나 피해보는지 아세요? 저뿐만 아니에요. 제 주변에서도 지금 난리 났어요. 그쪽이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기나 해요? 그 정도 위치면 좀 센스 있게 알아서 잘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업무를 하다 보면 정말 가끔 무자비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가 놓여 있게 된다. 이때 나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자책하기. "내가 바보같이 고민도 별로 안 하고 만들어서 이렇게 남에게 피해를 끼쳤구나. 아 나 왜 이렇게 멍청할까…". 다른 하나는 분노하기다. “지금 나에게 시비 거는 겁니까? 기껏 열심히 만들었는데 저야말로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2가지는 모두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악의 반응이다. 나는 분노, 좌절과 같은 감정의 폭풍에 휩쓸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상대방은 나를 흔드려는 시도를 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 담아서 이야기했고, 그 부정적인 감정에 나 또한 분노, 자책하면서 휩쓸려 버렸다. 내가 분노하든, 자책하든, 좌절하든 어떻든지 간에 휩쓸리는 순간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렵게 되고,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우리의 생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상황을 정확하게 보기가 어렵게 된다. 진짜 진실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적절한 대응을 하기 매우 어려워 진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이 진하게 섞인 말을 우리가 들으면, 일단 휩쓸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나의 마음을 단단히 잡아두는 것이다. 내가 섣부르게 극단적인 감정으로 치우치지 않게 해야 한다. 어떻게 답변할지에 대한 고민은 그 다음 문제다. 일단 내가 휩쓸리지 않게 꼭 붙잡고, 마음을 단단하게 잡고나서 어떻게 답변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관조하다. 관조하는 자세"라는 말이 있다.
관조란 주관을 떠나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것.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불안해하지 않고, 상황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나를 흔드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마치 관조하는 자세처럼 이 상황 속으로 내가 휩쓸려가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물론 절대 쉽지는 않다. 작정하고 나를 흔드는데... 어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최소 우리는 지금 나를 누군가 흔든다는 걸 인지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 마음속으로 “아 지금 저 사람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서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고, 내가 그 감정에 같이 휩쓸려가고 있구나"라고 되뇌는 것이다. 이게 "관조하는 자세"의 출발점이다.
처음부터 잘할 필요도 없다. 상대방의 감정의 농도가 짙을수록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거기에 휘둘리게 된다. 하지만 만약 상대방이 반복적으로 감정 섞인 말을 계속해서 한다면 우리는 확실하게 저 사람이 나를 휘두르고 있는 상황을 점점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로 갈수록 점점 더 상대방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말을 좀 험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과장된 제스처를 취한다든지 아니면 자기가 왜 피해자인지 끝없이 이야기한다던지, 목소리를 높여서 소리를 지른다든지, 좀 심하면 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다 나를 흔드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렇게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이 상황들에 익숙하게 된다. 상대방이 나를 흔든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당할지도 모른다. 감정에 계속해서 휩싸이고,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방이 나를 흔들고, 내가 흔들리는 상황을 계속해서 인지하고 있으면, 상대방의 특정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휩쓸리는 감정도 무뎌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슬슬 상대방 말의 허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사실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한 말들은 비합리적일 때가 많다. 내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때문에 허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 문장에서 보면 일단 나는 내가 만든 정책이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모른다. 저 사람이 피해를 많이 본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 피해를 끼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저 사람 혼자에게만 피해를 미치고 있는지 아니면 다수에게는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가설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저 사람도 나도 모르는 것들 투성일 것이다. 아니면 단 한 명만이 내가 만든 정책에 대해서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디테일하게 물어보면 대답을 잘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 영향이란 게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죠?", "그리고 피해를 같이 받았다는 주변 사람들은 왜 저에게 비판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죠?"이런 류의 질문들이 몇 개 이어지면 금방 논리가 무너질 수 있다.
어쩌면 정말 별거 아닌 일 가지고 핵심에서 벗어난 말들만 늘어놓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대방의 비난이나 이런 말들에는 내가 흔들리지 않는 데에 집중하자. 어떻게 답변을 잘할지는 그 다음 단계의 일이다. 흔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올바른 길을 반드시 찾을 것이다.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