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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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진 모르겠지만, 어느날 나는 카프카의 그레고리 잠자와 같이 하루아침에 변신하였다. 뚜렷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종종 스스로를 동굴에 가두고 짧은 겨울잠을 청하곤 했다. 짧지만 긴 겨울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암흑을 두르고 잠을 청하다가, 봄 햇살이 귀를 간지럽히면 슬그머니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곤 했다.
그 날도 나는 겨울이 찾아듦을 느끼고 동면을 준비했다. 하루 하루, 밖의 시간은 흘렀지만 동굴 속 시간은 멈추어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지각조차 할 수 없는 긴 암흑 속. 문득 발바닥이 가려워 왔다. 군시러운 느낌은 이내 척추를 타고 목 부근으로 올라왔다. 빈대 벼룩이 온 사지를 물어 뜯었지만, 집요하게 둔부를 노리는 파리 떼가 귀찮은 소의 꼬리 마냥, 기계적으로 긁어댔을 뿐이다.
한참을 긁어대다, 가려움이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었을까 아니, 왜 였을까 가 더 적합한 물음일까? 나는 강렬한 여름 태양에 노출된 것 마냥, 순식간에 언 몸이 녹아내림을 느꼈다. 나를 둘러싼 동굴의 허상이 무너졌고, 나는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 마냥, 내 자신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불쌍하고 역겨운 모습인가! 무엇이었을까, 아니 어떻게가 적합할까?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환희였다.
마치 동굴을 벗어나 이데아를 직면한 동굴인처럼 진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것은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가득한 각성이었다. 그동안 부정하고 싶었던 나의 모습들, 감추고 싶었던 상처들, 외면하고 싶은 현실들이 고슴도치의 가시마냥 생살을 뚫고 나왔다. 나는 가려움의 원인이 그 가시였음을 알았다. 곪아 터진 고름이 가시 구멍을 통해 새어나왔다. 아! 살았다.
얼마나 가식적이었는가, 얼마나 무지하였는가 그리고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나를 비추는 강한 빛에 숨을 그림자 조차 없었다. 모든 것이 발가 벗겨졌지만, 숨고 싶지 않았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채 에덴 동산에 선 것 처럼, 모든 것이 충만하였다. 그토록 강렬한 순간이 또 있었을까? 그러나 이 얼마나 황당한 계기인가? 자면서 얻은 깨달음이라니. 하지만 분명 그 어떤 경험보다도 농밀했다. 운명의 괘종 시계가 정오를 알리고 있었다.
(시나리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