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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cud Jul 14. 2024

영혼에 대하여

아빌리파이 5mg과 탄산리튬 150mg

어린 시절, 나는 무척 예민한 신체를 가진 아이였다. 불안을 토해낼 수 없는 신체는 극도의 긴장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불안이 머리를 죄여 올 때면, 나는 일종의 환상 같은 것을 보곤 했다. 그 환상은 거대한 근육덩어리의 한 남자가 부푼 근육으로 쥘 수 없는 가냘픈 꽃 한 송이를 쥐고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 환상이 찾아올 때면, 나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해야 했다. 한참 동안 게워내고 녹초가 되면 평온이 찾아와 잠에 들 수 있었다. 어린 영혼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30의 중반에 이른 나이, 지난 30년의 세월이 민감 세포를 닳게 하였는지, 이제 좀처럼 두통으로 힘들어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세월 덕분이 아니라, 내가 복용하는 최소량의 신경안정제와 양극성 치료제의 보조로, 불안에 대한 바리케이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전, 나는 조울 상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조울, 신의 축복 : https://brunch.co.kr/@gilsucut/14) 나는 나의 불안에 대해 양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은 지극히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생체적 반응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것을 온전히 겪어내고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객관성을 유지할 수는 없다. 마치 악몽에서 벗어난 아이가 현실을 부정하고 꿈의 세계에 집착하는 것처럼. 나는 인간이기에 내 감정을 부정할 수 없다. 과학은 많은 것을 밝혀내었으나 근원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감정 변화가 대뇌 편도체의 작용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현상에 대한 이해이지, 왜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나는 한동안 오만하여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다. 영혼에 대한 오해는 신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있다는 이원론에서 기인하였다. 육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에 대한 분명한 구분은 둘을 결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영혼이 진정한 '나'이고 신체는 아바타와 같이 영혼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라는 생각 또한 내가 영혼의 존재를 불신하게 만들었던 생각이다. 신체의 필멸성과 영혼의 불멸성의 대조는 영혼이 이데아에 속한 것이라는 오만한 판단을 만들어내었고, 그렇게 그어진 선은 극복하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영혼을 믿지 않는다'에는 수긍할 법 하지만 '나는 물질을 믿지 않는다'라고 외치는 자는 미치광이로 취급된다. 그만큼 물질주의는 오늘날의 세태를 지배하는 사상이다. 물질주의(Materilalism)에서 말하는 정신적 현상이나 의식조차도 궁극적으로는 물리적 상태와 상호작용의 결과로 간주된다. 모든 존재와 현상이 물질적 실체로 설명될 수 있다는 물질일원론인 셈이다.


반면, 모든 존재가 정신적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도 있다. "존재하는 것은 인식되는 것이다."라는 명제는 인식 즉 정신작용이 앞선다. 현실은 궁극적으로 정신적, 인지적 경험의 산물이며, 물질적 세계는 그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마치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정신세계에 따라 얼마든지 그 실체가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한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아빌리파이 5mg과 탄산리튬 150mg을 삼키고 내 신경을 안정 상태가 되길 기다렸다. 조금 전까지 무기력하고 우울로 가득 찼던 기분이 마치 새 신을 신은 것 마냥 가벼운 느낌이다. 과연 나는 기름칠하고 조율된 기계인 걸까?


나는 미치광이가 아니다. 고로 신체가 존재함을 안다. 반면 나는 미치광이이다. 그렇기에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나는 이 둘이 독립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신체와 영혼의 상호작용의 불가해성에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바타는 전류신호로 조종하는 뇌와 아바타 신체를 연결한다. 그러나, 우리의 신체와 영혼사이에는 그 어떤 연결성을 발견할 수 없다. 데카르트는 이를 송과선(pineal gland)을 통해 상호작용한다고 했지만, 증명해내진 못했다. 나는 사실 우리가 구분하는 두 존재가 하나의 실체였다는 스피노자의 견해에 더 끌린다.


스피노자는 실체가 하나뿐이라고 주장했다. 스피노자는 정신과 물질이 서로 다른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의 두 가지 속성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상호작용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으며, 이는 동일한 실체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 실체를 무한하고, 모든 존재와 현상의 근원으로 여겨 이를 신(자연)이라고 불렀다.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을 동일시하여, 신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신은 무한한 속성을 가지며, 연장과 사고는 그중 일부일 뿐이라고 말하였다. 반면 데카르트는 신은 초월적이고 물질세계와 분리된 존재로 보았다. 스피노자는 이 생각을 부정했다.


나는 전적으로 스피노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것은 지난날, 나 자신에게 실험한 결과가 증명한다. 하나, 정신약물은 분명 정신에 작용하는 약-물(질)이다. 그것은 물질과 정신이 하나임을 입증한다. 하나, 나는 몇 주간 침대 밖을 벗어나지 못한 지독한 경험으로 자유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개념인지를 경험했다.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착각이고, 실제로는 필연적인 인과 관계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하나, 나는 신(자연)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예민한 신체 혹은 영혼의 발달한 감각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신의 존재는 너무도 크고 압도적이기에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느낄 수는 있다. 나의 모든 행위들은 그것(신-자연)에 기인한다.


비록 나는 아빌리파이 5mg과 탄산리튬 150mg의 힘을 빌러 글을 쓰고 있지만, 이것 역시 나의 의지가 아니다. 나는 이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고, 그것에 대해 왜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의무감으로 기록하고 있다.


영혼에 대하여,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르는 신에 대하여, 나는 놓을 수 없는 끈을 쥐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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