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비가 오면 어떡하죠

스물여덟, 이월에 씀

by 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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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로 가는 버스 안

여행에 대한 노래들을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 노래들은 어째서 죄다 아름답게만 그려지는 걸까

여행 망했다 우울하다 이런 내용의 노랜 없는걸까

여행은 어쩌면 지나치게 미화 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한국을 떠나온지 벌써 3주, 벌써 열 두 개의 유럽 속 도시를 다녔다. 그러나 그 중 여섯 도시에서 내내 장마가 오고있다


비가 오는 날 여행을 해본 적이 있는가?

비가 오면은 일단 나갈 수가 없다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알록달록한 베네치아도 수채화 붓 씻은 물마냥 혼탁해지고 볼빨간사춘기가 노래하던 여행의 달콤한 음율도 딱딱한 빗소리에 가린다

그러나 애초에 이런 불평들은, 여행지를 내가 사는 곳과 아주 다른 특별한 곳일거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사실은 그 여행지도 나의 수원처럼 당연히도 누구네의 지긋지굿한 동네이고 일상일 것이다

겨우 비가 온다고 고개를 처박고 다니는 동양인이야 그곳이 동네인 그들에게 우스운 풍경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딱히 비가 오지 않는 동안에도 여행에 대한 염증을 내내 곱씹으며 다니고 있다


어쩌면 여행은 좋아야만 한다는 강박 아닐까?


여행이 좋은 이유는 뭘까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꽤 많은 종류의 여행을 다녀왔음에도 아직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른다.

그 여행 중엔 그냥 주변의 좋더라 카더라에 등 떠밀리듯 떠난 여행도 허다했다.

멋진 건축물과 광활한 풍경 이색적인 길목을 보며 박수도 치고 사진도 찍어보지만, 실은 항상 큰 감흥을 얻지 못하고 미지근하다.

배부른 소리라 할 것이 아니라, 나는 정말 궁금하다. 에펠탑을 보며 한참을 감상에 빠지고, 타워브릿지의 야경에 가슴이 벅찬 당신들의 포인트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입국 비행기까지 사흘이 남았다. 이탈리아에서의 남은 시간들은 마지막 날까지 내내 비가 온단다. 애초에 날씨도 확인 못했던 문제이지만, 난 참 재수도 없지 중얼거리며 사실은 남들 못 가 안달나는 세계여행을, 채 즐기지도 못하는 자신이나 연거푸 탓하는 것이다.


하늘이 또 울먹거린다


에피톤 프로젝트 <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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