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 좋은 외제차, 상급지의 자가 아파트, 탄탄한 영업이익의 법인 대표,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일, 종종 떠날 수 있는 여행과 비즈니스 좌석, 훌륭한 취미생활 등 내가 꿈꾸고 바라는 미래는 이런 것들로 가득 차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것을 꿈꾸는 게 SNS의 폐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들은 온라인상에 떠도는 20대, 30대 평균 연봉은 고소득자가 끌어올린 평균연봉이라고, 중위소득은 250만 원이라고 말한다. SNS 속 그들이 소비하는 명품과 호캉스, 오마카세는 소득에 맞지 않는 사치이고 어린 학생과 청년들의 사고를 흩트려 놓는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일정 부분만 동의한다. 잘 살아가고 있음의 정답은 스스로에게 있다. 그 정의는 스스로만 내릴 수 있다. 만약, 내가 현재 소득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중위소득, 평균소득이든 상위 10% 소득이든 그건 부족한 소득인 거다. 남들과 비교하며 나의 현재를 판단하는 사고는 무한 경쟁을 주입시킨 교육의 폐해일 수도 있다. 시스템의 문제를 비판할 수 있고 개선할 여지도 필요하지만, 그게 현재의 나를 바꿔주지는 않는다. 가치관은 오직 스스로만 변화시킬 수 있다.
나보다 높은 경제 수준을 지닌 누군가의 SNS가 현재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팔로잉을 멈춰라. 나보다 잘 나가는 대학동기에게 질투와 박탈감을 느낀다면 앱을 삭제해라. 경제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 누군가는 그들을 보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운동하고 공부하고 이직하고 투자하고 사업을 시작한다. 나 역시 그렇다. 전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모든 것은 지극히 단순하게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비판을 할 시간에 본인이 그토록 원하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갖추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지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속박하는 건 본인이다. 나 역시 이러한 속박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다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라는 것을 상기한다. 이 에너지 방향을 나에게로 돌린다.
내가 바라는 삶은 너무 아득히 멀고 흐릿하다. 많은 유튜브 영상들과 책을 통해 동기부여를 해보지만, 그 순간에 그치고 만다. 그럼에도 목표를 쪼개고 방향성을 잡고 힘을 내어 더디더라도 한 발짝 나아가본다. 얼마나 목표에 가까워졌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다. 이 사고와 행위 자체가 나를 살게 한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성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당신들을 응원한다. 그것이 돈이든 커리어든 가족과의 행복이든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