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외동으로 자란다는 건

단단한 홀수

by 김이불

나는 외동으로 자랐다. 옛말에 금지옥엽 외동딸이라지만 그렇게 오냐오냐 자란 건 아니다. 많은 걸 독차지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것들 중에 외동은 외롭다는 말이 있다. 어느 정도 공감은 하는 바이지만 그 말에서 주는 편견은 살아오면서 넘어야 할 산 같은 것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다만 최근 주변에 둘째 아이를 가진 지인이 있었는데, 본인이 외동으로 자라 꼭 둘째를 낳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모두 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외동 일리는 없으니까.


외동에 대해 갖기 쉬운 선입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싶진 않다. 뭐 높은 확률로 그럴 수는 있으니까. 나눌 줄 모를 수 있고, 이기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형제자매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나눌 줄 알고 이타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외동의 좋지 않은 점은 이렇다. 나말고 부모님을 챙겨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 나중에 내가 정말 혼자가 되면 이 세상에 덜컥 나 혼자만 되는 그런 상상을 자주 하긴 했지만, 커서 보니까 그것보다는 그냥 부모님을 챙겨줄 누군가가 더 있었으면 좀 수월했겠다 싶긴 하다. 다가올 환갑이나 칠순 이런 가정의 잔치, 일종의 프로젝트 매니저도 모두 나 혼자 해내야 하니까. (마음으로는 이미 남편과 나누고 있음)


그 외 나머지는 만족한다. 어느 정도의 외로움도 없는 사람이 어딨겠어. 어차피 인간은 외로워. 오히려 난 혼자만의 시간을 잘 즐길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서 좋다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경우야 말로 좋지 못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게 우정이던 결혼이던.


자녀 계획을 세우는 주변으로부터 외동의 삶은 어땠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럼 나는 말한다. 아이가 타고 태어난 기질적인 면을 고려하는 게 좋겠다고.(연년생은 어렵겠지만) 전문적으로 조언해주지는 못하지만. 형제들이 있다고 해서 꼭 그 사이가 좋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요새는 아이가 하나인 집도 많으니까. 외동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키우냐의 문제 같다고.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가족의 형태가 있다. 가족 구성원의 숫자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말하는 이상적인 가족이라는 것이 내가 살아야 할 인생의 정답은 아니듯. 외동도 사실 별거 없다. 남편은 말한다. 사람들은 단지 심리적으로 홀수보다 짝수가, 세모보단 네모에 안정감을 느껴서 그런 거란다.(정작 본인은 여동생이 있지만 형제에 대해 놀라울 만큼 별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단단한 홀수라고 말하겠다! 외로움에 강하고 사회생활에 도가 튼 서른한살 홀수.







매거진의 이전글6. 계획형 인간의 타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