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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Oct 01. 2024

유튜브는 뭐한다꼬 시작해 가지고

2023년 3월 3일.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유튜브는 안 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나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유튜브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와 망설여지는 이유 사이에서 자그마치 1년 반 동안 오락가락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저울이 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거였다.



유튜브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 하는 일을 더 잘하고 많이 하고 싶어서, 그러려면 나를 더 알려야 해서, 이 일을 더 오래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SNS 마케팅이 필수라서.


유튜브를 망설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너무 열심히 사는 것처럼 비치기 싫어서, 얼굴이 팔리고 싶지 않아서, 가뜩이나 할 일이 많은데 그 위에 또 다른 일거리를 얹고 싶지 않아서, SNS에 매인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양쪽 다 너무 합리적인 이유라 고민이 깊었다. 마흔이 넘어서까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가 한심하기도 했다. 마흔이 넘어서까지, 아니 어쩜 죽을 때까지 진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웠다.


내 앞에 닥친 현실은 유튜브를 하지 않기로 한 확고한 다짐을 계속해서 흔들었고 6개월 후, 나는 방학인 아이들이 집에 있는 상태로, 첫 영상을 찍었다.


화질도, 음질도 별로인 그 영상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구독자가 몇 명이나 늘지, 사람들이 봐주기나 할지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었다. 일단은 시작에 의의를 두자, 하다가 정 힘들면 그만두지 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하며 나 자신을 타일렀다.


그 후로 1주일에 한번,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는 2주일에 한번 꾸준히 영상을 올렸다. 영상의 실적이 좋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고 구독자 수가 급증할 때도, 일주일 내내 큰 변동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와의 약속이라 생각하고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계속해서 영상을 올렸다. 다행히 할 말이 많았던 터라 콘텐츠가 바닥나는 일은 없었다.


유튜브는 그동안 내가 해온, 글 쓰는 일과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매력이 있었다. 글 쓰는 일이 몸에 밴 사람인지라 처음에는 열심히 대본을 써서 그걸 바탕으로 말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본대로 말하지 않는 나를 보았고 대본이 오히려 내 생각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부터는 대략적인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넣고 그냥 생각의 흐름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이 차츰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만에 구독자 약 2천 명을 모았다.


가독도가 붙으니 머릿속에 더 많은 아이디어가 넘실대었고, 그걸 빨리 현실화하고 싶은 욕망이 앞섰다.


역류성 식도염에 걸린지도 모르고, 그 이유가 유튜브 때문인지도 모르고 나를 갈아 넣고 있었다.


나에게는 본업이 있었고 돌봐야 할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 게다가 기획, 촬영, 편집을 혼자서 다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유튜브 촬영에 방해가 된다고 아이들에게 잔뜩 짜증을 내는 모습은 물론 구독자가 몇 명이 늘었나 하루에도 몇 번이나 확인하는 내가 싫었다. SNS에 중독된 것 같은 내 모습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유튜브 그만둬야 하나?


유튜브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새로운 물음표 하나가 순항하는 듯해 보였던 항로에 잔물결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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