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JFK 공항, 한국행 비행기 수속 절차를 밟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조금씩 줄어드는 그 줄의 끝자락으로 우리 가족은 이동한다. 8년 만의 한국행이라는 감흥 때문에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줄의 행렬에 기꺼이 동참한다.
가족 단위 혹은 연인 단위로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이 재밌다. 그들의 옷차림에서, 몸짓에서 가족임이 드러난다. 길쭉한 얼굴형이 누가 봐도 가족인 네 명은 전부 긴팔 상의에 반팔 하의를 입고 있다. 저런 것도 가족끼리 닮나. 아니면 맞춤 의상인가.
학기 중이라 그런지 어린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제외다. 8년 만의 한국행 날짜를 4월로 잡은 건, 비수기라 비행기표값이 가장 저렴해서다. 방학이 시작되는 여름이나 연말이 성수기인 건 이해가 되지만 상식적으로 한국 날씨가 가장 좋은 그때가 비수기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5시간의 비행 동안 각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당장 다음 날 있을 북토크 때문에 걱정 반 설렘 반인 상태였고
첫째는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게임을,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둘째는 처음 방문하는 한국에서 어떤 선물을 받을지 들뜬상태였고
신랑은... 모르겠다.
15시간을 날아 도착한 한국 공항. 뉴욕에서 한국어를 못 쓰고 살았던 건 아니기에, 딱히 사방에서 들려오는 한국어가 반갑다거나 하지는 않다. 줄을 안내하는 담당자의 거친 모습에 살짝 눈살이 찌푸려질 뿐.
바뀐 것만큼이나 그대로인 것도 많다.
이 날로부터 14일 뒤 같은 장소에 도착한 우리 가족. 5월 3일. 하필 한국의 황금휴가에 걸려 엄청난 인파를 맞닥뜨린다.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머릿속은 절반쯤 우리가 사는 뉴욕, 브루클린으로 돌아가 당장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지난 2주 간의 추억이 아직 잔상으로 남아 있는 머릿속에 애써 내가 해야 할 일, 장 봐야 할 것들의 목록을 욱여넣는다. 그러다가 급 피로가 몰려온다. 길고도 긴 줄, 7개로 늘어나버린 엄청난 짐가방. 설렘이 빠져나가버린 내 몸은 어느덧 기민한 관찰력을 상실하고 피로를 누더기처럼 걸친 채 줄이 조금씩 줄어들 때마다 기계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동작만 반복한다.
새삼 매년 이걸 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이 존경스럽다. 8년 만에 경험한 15시간 비행은 나를 질리게 한다. 긴 시간 자체가 힘든 게 아니라 찌푸등한 몸으로 한 자리에 앉아 있기가 힘들다. 8년 전에는 지금보다 젊었고 아이도 하나였으니 버틸 만했겠지만 이제 40대를 훌쩍 넘어선 내 몸은 해발 3만 피트에서 이곳저곳 저리고 쑤신다고 하소연한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다음번에는 돈 좀 많이 벌어 비즈니스석을 타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이 치고 올라온다.
11년 전 한국을 떠났을 때, 난 한국과 뉴욕을 자유로이 오가는 삶을 꿈꿨고 그게 쉬울 거라 생각했다. 한국에 세컨드 하우스쯤은 쉽게 마련해 두고 내킬 때마다 방문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게 얼마나 나이브한 생각이었는지, 양쪽에 앉은 두 아이의 시중을 드는 가운데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최대한 온몸을 비틀어보며 그때의 나를 질책해 보지만 그렇다고 내가 딱히 잘못한 건 없다. 인생이 그렇게 흘러갔을 뿐.
"한국, 안 그리워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안 들어갔어요?"
남들이 물을 때마다 별로 그립지 않다고, 여기서 사는 게 그냥 편하다고 대답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내가 잊고 있던 한 장소.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도 나에게 편안하게 감기는 그곳을 잠시 잊고 살았으니까.
남들만큼, 아니 어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도 안 되는 게 있더라. 물론 무리해서라도 가려면 갈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이곳에서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을 뿐. 그리고 그 최선의 결과, 내가 놓친 것들이 뒤늦게 밀려온다. 그동안 어쩌면 꾹꾹 눌러놓고 애써 외면했을지도 몰랐던 나의 모국, 그리고 나의 가족.
경계의 삶을 사는 한, 평생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제다. 이 상황을 타개해 보기 위해 천박한 욕심도 내보고 (근데 그걸 누가 천박하다 욕할 수 있을까) 허황된 꿈도 꿔본다.
그러다 엄마 아빠가 아파도 난 최소 15시간에+5시간 정도를 더 기다려야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내가 놓쳤을지도 모르는 온갖 기회를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내가 이곳에서 누린 기회들도 있을 테니 그건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이제부턴 조금 덜 열심히 사자고 다짐했는데, 좀 설렁설렁 삐뚤삐뚤 살아보자고 다짐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성실함이라는 그놈의 관성이 불쑥 튀어나와 시차적응이 대충 끝난 나를 기어이 컴퓨터 앞에 앉힌다. 그리고 이 글을 쓰게 한다.
유튜브를 시작한 이후로 글다운 글을 쓴 기억이 없다. 매번 유튜브 영상을 홍보하기 위한 짤막한 글을 썼을 뿐. 그래서 그런지 이 글을 쓰고 나니 어딘가 살 것 같다. 문득 알겠다. 내가 8년 동안 한국에 가지 않고도 버틴 건 모국어를 계속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걸. 한국어로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또 한국어 책을 사서 읽는 일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단 걸.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경계의 삶을 지나는 동안 일단 이것만이라도 계속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또 언제 갈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때까지 내가 기대어볼 건 그뿐이다.
한국에서의 즐거웠던 기억도, 힘들었던 기억도, 못났던 기억도 전부 기억 한 편에 묻고 이제 다시 이곳에서의 삶으로 건너간다. 내가 딛고 선 경계의 삶이 지금까지는 자유를 위장한 속박된 삶이었다면 이제는 진짜로 자유로운 경계의 삶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