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조심, 사람 조심

눈이랑 귀는 두 개, 입은 하나라지요

by 애매한 중간 인간

그냥 웃었고, 이상하게 지쳤다.


사람 모인 곳은 언제나 말이 돌고, 뱉어진 말은 스스로 생기를 얻어 구천을 떠도는 영혼처럼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여러 마음속을 들고난다.

내용에 따라 혹은 전하는 화자의 마음 가짐에 따라 원한을 품은 귀신처럼 불안과 오해를 퍼트리기도 하고, 때로는 요정처럼 뾰로롱 긍정적인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전자이겠다.


시답잖은 가십거리, 누군가의 사생활, 지극히 표면적인 업무 얘기가 섞이고 뒤엉켜 누구 얘기였는지, 이 말을 누가 한 것인지도 모르게 돌고 도는 회전목마.

화려한 조명과 동화 같은 무대 속, 힘차게 달리는 가장 멋진 모습으로 굳어버려 느릿하게 같은 자리만 빙글빙글 돈다.




그래도 어쩐담. 내 얘기가 도는 게 싫어 입을 닫으면 그것도 또 다른 입방아의 주제가 되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라도 무언가 끊임없이 소재를 만들고 화둣거리를 던지기 위해 불쏘시개를 찾아 머리를 굴린다. 그렇게 한참만에 무난한 소재를 찾아 의미 없는 아궁이에 눈물 젖은 장작을 넣어본다.


다음날 기억조차 못할 휘발성의 모래성 같은 얘기들.

요샛말로 말이 좋아 스몰토크지 내용은 듣지도 않고 리액션만 난무하는 맞장구 대잔치가 따로 없다.

누군가 괜찮은(그냥 만만하게 씹을 만한) 주제를 하나 던지면 참여한다는 거에 의의를 두고 너도 나도 자기 색깔을 입혀 버전만 다르게 한 마디씩 보탠다.

이런저런 모양으로 우려먹는 모습이 꼭 재료 하나로 플레이팅만 다르게 하는 요리처럼 보인다. 여러 음식을 먹는듯한 느낌이지만 실상은 알맹이는 하나기에 영양적으로는 꽝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서글픈 인생이다.

이런 것을 보통 사회생활이라 하지만 이놈의 사회생활은 도대체 얼마를 더 해야만 적응이 되는 걸까.

우릴대로 우려먹어 언제 적 이야기인지 조차 모를 몇십 년 묵은 씨간장 같은 소리에 절여진 몸과 마음은 집에 오면 엄청난 피로도에 지쳐 널부러진다.

예능에서 MZ들의 마이웨이 에피소드를 종종 접하지만 이론적인 가상일 뿐, 현실에는 짠내 나는 진짜의 삶이 있다. 회사는 매일 나가야 하고 결제 금액들은 정기적으로 돌아오고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소소한 행복을 찾아야만 하는.

그러나 이런 무용한 가십거리에 웃으며 서 있는 내 모습이야 말로 현실을 가장한 허상 아닐까.




아뿔싸, 멋쩍은 적막함을 순간 견딜 수 없어 섣부르게 말을 꺼냈다.

왜 그랬을까, 허황되게 길어지는 얘기에 나도 모를 실언 한두 마디가 보태지고 그렇게 나를 평가할 빌미를 내줬다. '굳이..?' 싶은 선을 살짝 넘었다 느끼는 순간 입술을 떠난 말은 의도를 벗어나 더 멀리 가버렸다.

그만두려면 지금이었는데 한 걸음 늦었다.


밸런스 게임. 어릴 적부터 시소를 못 탔던 나는 회사에서도 이 밸런스를 맞추지 못해 이렇게 또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래도 애써 웃으며 오늘 재밌었어~ 다음에 또 놀자! 했던 어린 시절처럼 나는 쿵 찧은 엉덩이를 괜찮은 듯 쓱쓱 한번 털어버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마네킹 같은 억지 미소를 지어본다.

웃음으로 봉합해 보려 하지만 가장자리가 자꾸 들뜨는 것 같다.


자리가 파한 후 후회가 스며든다.

나도 원하는 바는 아니나 태생이 과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곱씹고 뒤감는 기질인 탓에

생각할수록 단어 선택에, 말투에, 과잉된 제스처가 떠올라 하염없이 밑으로 가라앉는다.


그렇게 허탈하고 초라한 마음만 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