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납셨네
말 못 하는 동물과도 우정이 생기고, 뜻 모르는 외국에서도 사랑이 싹트는 걸 보면 '말이 통한다'는 것은 단순한 텍스트 해석이 아니란 얘기다.
ㅎㅏ.. 또 시작이다.
혹여나 본인에게 불리할까 싶어 한껏 깃을 치켜세우고, 책 잡힐까 이중 삼중 안전펜스 치는 꼬락서니가 아주 그냥 별꼴, 눈꼴시렵다.
저 사람도 한국인인데, 같은 한글을 쓰고 있는데..
당최 무슨 말인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나는 나의 지능까지 의심할 지경에 이르렀다.
단독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부분 다른 팀의 협조가,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그만큼 커뮤니케이션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무수한 해석들 그리고 이해관계와 정치가 지저분하게 엉겨 붙어, 흐르지 못하고 고인 웅덩이가 된다.
누구 책임이에요? 누가 잘못한 거예요?
원인을 파악하려 하는 건지, 그냥 화풀이로 쪼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정작 상대에게는 입 벙긋 못하면서 속으로 씩씩대다 음습하게 다음 스텝을 준비한다.
바로 근거 남기기와 히스토리 뒤지기.
객관적이고 시각적인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서면으로 진행한다. 전화로 업무를 했더라도 속기사처럼 다시 한번 상황을 읊어 내용 증명 발송하듯 메일을 보낸다. 원래도 히스토리를 남기기 위해 지향하는 바이긴 하나 그 과정이 더욱 번거롭고 불필요한 것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프로젝트의 생애주기에 대해 이토록 치밀한 기록에 남기는 일에 나는 마치 조선 시대의 사관이 된 듯했다.
다만 이 상황이 피로하기 그지없는 것은
우리가 준비하는 싸움이 과거형, 현재형이 아니라 미래형이기 때문이다.
좋게 좋게 마무리되면 모르겠으나 혹시라도 일이 꼬이면 누구 책임인지 소재를 가리고 즉시라도 비난을 퍼부을 수 있도록 포탄을 장전해 놓는다.
필요할 수는 있으나 지나친 그 '정도'가 문제다.
게다가 진짜 이슈라고 할 만한 일은 생각보다 생기지 않는 게 함정이다. 뭐랄까, 건강 염려증 같은 맥락 같은.
나는 밀려오는 현타에 잠시 몸을 맡기고 멍하니 모니터에 시선을 기대어 초점 없는 눈으로 가라앉는다.
정작 실상은 간혹 가다 벌어지는 다툼 수준의 트러블이지만 순간 몰입도는 검사, 변호사들이 따로 없다.
누가 언제 이런 말을 했는지, 메일과 메신저를 뒤지고, 회의록을 검색하고, 전화로, 구두로 했던 얘기들의 기억들을 더듬어 자기한테 유리한 그림으로 퍼즐 조각을 맞춰 내민다.
최대한 감정은 뺀 것처럼, 공적인 업무 진행을 위한 이성적인 칼을 빼드는 모양처럼 입장을 표명한다.
그런데 문제는 판사랄게 없다는 거다. 여기에는 처벌, 판결은 없고 화해, 조정만 있다. 숨겨진 의도를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나 기분 나빠, 내 성깔 한번 볼래?!'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유는 가만히 있으면 앞으로도 그렇게 볼까봐 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솔직한 감상평으로는 길 가다 만나는 강아지들이 둘이 깡깡대는 기싸움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될 일은 하게 된다. 왜냐면 우리는 고용된 월급쟁이니까. 마무리는 지어야 되기에 시간이 촉박할수록 을이 갑이 되기도 하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업무 관계 속에서 이런 것들로 상하 관계를 확인하려는 노력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책임 소재보다는 업무를 원활하게 하는 방법이 우선이고 아쉬운 소리 하게 되는 게 손해 아닐까.
이런 근거들을 남기는 게 누구에게 무슨 의미 일까.
이런 일련의 과정이 나에게 남긴 하나의 습관은 내 직장생활에 대해서도 틈틈이 메모를 남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혹시 모르겠다 이렇게 순간들을 모으는 습관이 나중에 전화위복이 될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