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에서 매일(mail)소설(social)을 쓴다

사회적 공손

by 애매한 중간 인간

이게 협박이지 요청이야?

어랍쇼, 양해?.. 양 해..?!!


키보드를 두드렸다가 지웠다가

모니터를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봤다가

한숨 깊게 쉬어 날숨을 강제로 내보내곤, 답답한 마음을 물 한잔으로 달래 볼까 일어난다.

흠.. 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메일의 회신을 어떻게 해야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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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포장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진짜 요점은 잘 표현하기도, 잘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포장지보다는 내용물이 잘 보여야겠지만 또 외양이 허술하면 성의 여길 수도 있는 법이다.


내부의 일정과 리소스 부족으로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들을 줄줄이 읊어나가지만 요점은 NO.

직급이 올라갈수록 포장에 그닥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꽤나 있지만 지금 내 레벨에서는 최대한 메꾸(메일꾸미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직장인의 내공이고 실력. , 어쩌다 이런 잡기술이 늘었을까나.

그것도 좋게 표현한 것이지 나쁘게 말하면 눈치다. 나는 여기서도 눈칫밥을 먹고 산다. (아 배불러..)

살찌는 이유의 8할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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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위선일까, 배려일까, 이중인격일까, 사회화일까.

같은 말에도 받침에 ㅇ을 쓰면 내용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귀여운 착시 방법이 하나 있다.

~일까용? 맞습니당. 넹! 으로 표현되는 일명 용용체.

(아 진짜 쓰기 싫다ㅠ) 억지웃음으로 대변되는 내 또 다른 모습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용용체까지 썼음에도 읽씹 하는 상대방을 보며 무슨 상황일지 짐작해 본다. 내용이 껄끄러워 상대방도 단어의 선택을 고심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윗선과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짜는 중일까, 혹시 모니터를 킨 상태로 자리를 비워 읽었음이 되었지만 실제로는 읽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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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시겠지만, ㅇㅇ건 관련하여 확인되셨을까요~?`

추가 메신저를 남기면 재촉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울 수 있을 테고.. 그저 기다리자니 시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에둘러 알리고 싶다.


이모티콘을 훑어본다. 답변 대기 중이라는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가벼운 느낌의,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선은 지킬 수 있는 무난한 디자인으로. 의도적으로 상냥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에 비해 얼굴은 아무것 없는 그저 의 표정이 더해진, 따로 노는 내 모습이 슬퍼 문득 자괴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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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료가 되는 게 이곳의 생리, 어쨌든 퇴사하지 않는 이상 계속 얼굴을 마주칠 수밖에 없으니. 무얼 위해 이렇게 사나 싶은 생각에 1분 철학자 모드에 풍덩 빠졌다가 '일은 해야 하니까'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붙잡아 서둘러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왔다. 역시, 자기 합리화는 멘털을 잡기 위한 만능키다.

그렇다고 진행상황을 전화해 묻기에도 불안쩍은 면이 있다. 말투에서 묻어 나오는 음의 높낮이, 단어 사이를 정확하고도 띄엄띄엄 꾹꾹 눌러 담아 단단하게 내뱉는 행간의 정적, 일부러인지 절로 나오는 것인지 의도를 모를 들릴락 말락 한 찰나의 옅고 미세한 한숨. 평소와는 다른 아우라,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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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을 잘 못 느끼는 둔탁한 성격이거나 상대방이 그러든 말든 신경 안 쓰는 최강 멘털이라면 모를까.

알고 싶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촉. 그걸 처리할 용량이나 좀 되면 모르겠는데, 깜냥이 안 되는 그릇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

그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직장인의 서사, 미완을 채워가는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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