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지킴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by 애매한 중간 인간

나는 직장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의 신분제 속에 갇혀 있다.


어디서 봤더라, 직장인의 삶이 고대 노예들의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현대판 계급제인 직장 체계는 중세 봉건사회 못지않게 견고하고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상하가 명확한 위계질서 안에서

나는 묵묵히 사슬을 끌며 살아가는 신분제의 가장 하층민, 노비나 천민 그 어디쯤이다.


그나마 호칭이 선생님 or OO님 같은 곳들은

(그 속에서 연차나 기타 조건에 따른 우열은 또 있겠으나)

이처럼 대놓고 하대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윗자리를 선점한 자들은 그래봤자 벼슬 자리인 장(長) 이름 하나 달고

뭐라도 된 마냥 또 다른 주인 행세에 취해 고깟 감투마저 뺏길까 아등바등이다.


회사는 오너와 근로자를 나누고

근로자는 임원과 직원으로 나누고

직원은 팀장과 팀원으로 나누고

팀원은 각 직급별로 나누고

직급 내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고


우리끼리 상하 단계를 나누고

오더를 내리는 사람과 수행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본인 위치를 확인하며 쓸데없는 으쓱거림을 느낀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자존감을 챙기는 방법일까.


너희가 모르는 또 다른, 나름의 고충이 있다며 툴툴 대지만

그렇다면 어차피 월급쟁이들끼리 다 같이 힘든 인생,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위로해 줄 수는 없을까.

회사에서 인간에 대한 연민을 얘기하기에는 너무 F 감성인가.

너무 밟혀만 있다 보니 나오는 볼멘 불만인가.


다른 행복감을 찾아야겠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스스로에게 의미 부여를 해본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유의미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마치 별자리처럼 내 삶의 우주 곳곳에 점으로 찍혀 있는 이따금씩의 좋은 기억들.


버스에서 앞뒤로 떨어져 앉는 아이들에게 붙어 앉으라며 자리를 바꿔주고

지하철 플랫폼에서 낯선 이의 까진 뒤꿈치를 보고 밴드를 건넨다.

이 거지 같은 하루 속에, 그 사람들의 잠깐의 미소와 고마움의 표현이 알 수 없는 위안이 된다.


조용히 곱씹어 본다.

누군가의 사소함으로 인해 나의 고단함이 어루만져진 순간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를 친절로써 보듬어보려 했던 순간들.


작은 행동들이 삶의 각 층에 자리 잡으며 수채화를 그려내듯 교차하고 겹겹이 쌓여간다.

그러나 어두운 물감의 붓질이 계속되어 너무 검게는 변하지 않길.

손길을 잠시 멈추고 파렛트를 깨끗이 닦아 투명한 물 한 방울 떨어트린다.


내 마음 웅덩이에 스며드는 낯선 맑음 한 방울.

조용히 번져 또 다른 별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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