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 메시아 /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 스핀 아웃 外
2020년 1월에 정주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리.
빨간 머리 앤 시즌 3
(Anne with an "E")
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실수들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앤(에이미베스 맥널티). 한번 꽂히면 자기주장이 무조건 옳다며 돌진하다 그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한심하다며 자학하는 앤의 모습을 진입장벽이라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이렇게 우당탕탕 부딪히며 폭풍 대사를 쏟아내는 게 이 시리즈에서의 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개취로는 시즌 3에서 너무 PC를 끼얹은 듯했다. 시즌 2에서는 원작과는 다른 이런 시도들이 그럭저럭 괜찮은 응용 같았는데 이번에는 중간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 페미니스트 롤은 선생님에게 맡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별로인 시도였다고 나무라는 거 아님-
엇갈리고 또 엇갈리던 길버트(루카스 제이드 주먼)와도 드디어! 극적으로! 엔딩 5분 전에 예쁘게 마음을 확인했다. 시즌 3의 끝으로는 좋았지만 이게 시리즈의 피날레라니 아쉽긴 하다. 아직 못 푼 떡밥이 있으니까. 이를테면 인디언 소녀 카퀫의 이후 이야기라거나, 앤과 길버트의 꽁냥꽁냥이라거나, 롱디 커플 앤과 길버트의 일상이라거나(..)
무튼 이렇게 애번리의 앤 그리고 길버트와는 안녕!
스핀 아웃 시즌 1
(Spinning Out)
뛰어난 재능을 가진 피겨 유망주 캣 베이커(카야 스코델라리오)는 불운한 낙상 사고로 슬럼프를 겪다 페어 스케이팅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그런데 스케이팅을 계속하기 위해 캣이 극복해야 할 난관은 한 두 개가 아니다. 솔로에서 페어로 전환하는 것도 힘든데 하필이면 파트너는 꽁기꽁기한 저스틴(에번 로더릭)이고, 엄마와 동생도 속을 시끄럽게 만든다.
일단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다 한 건 확실하다. 예고편을 보면서 빙판 위의 ‘블랙 스완’을 기대했지만 막상 보니 스포츠 드라마가 아닌 막장 가족물의 느낌이 더 컸다. 조울증 환자인 캐럴(재뉴어리 존스)과 캣의 행보는 종종 ‘아 왜!! 아오 쫌!!!’ 소리가 절로 나왔고, 스케이팅 씬은 조금이라 아쉬웠지만 나올 때마다 톡톡히 시선을 화면에 고정시킬 정도로 인상 깊었다.
전체적으로는 미묘했으나 다음 시즌이 제작된다면 볼 의사 있음.
메디컬 폴리스 시즌 1
(Medical Police)
우연히 신종 바이러스를 발견해 어쩌다 CDC 특수요원이 된 상파울루 병원 의사 콤비의 환장 소동극.
예고에서도 병맛의 기운을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로 뻔뻔하게 병맛일 줄은 몰랐다. 간혹 개그 코드가 맞는 씬이 나오면 피식피식 웃었는데, 그때 웃고 만 내 모습에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시리즈가 아니라 단편 영화였다면 재미를 더 크게 느꼈을 것 같은데 전 회차를 쭉 보니까 피식잼이 데크레센도가 됐다.
만약 다음 시즌이 나온다면 그때는 안 보고 패스.
파이널 판타지 XIV: 빛의 아버지 시즌 1
(ファイナルファンタジーXIV 光のお父さん )
은퇴한 아버지께 ‘파이널 판타지 14’ 게임을 해보시라고 권유한 뒤, 게임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모험을 떠나며 서먹서먹해진 부자관계를 회복하려는 아들의 이야기.-디스 이즈 랜선 효도-
일본의 게이머 마이디(Maidy)의 블로그 포스트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장면과 게임 화면이 번갈아가며 나오는데, 게임 씬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실화의 주인공인 게이머와 길드 멤버들이 게임 속의 기능으로 직접 연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가슴이 훈훈해지는 작품인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찾아볼 걸. 역시 실화만 한 드라마는 없나 보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 2
(Sex Education)
예고가 공개되자마자 김치 논란으로 시끌시끌해졌지만 역시 그것 때문에 안 봤다면 아까웠을 드라마였다. 그 엑스트라의 문제의 한 마디만 편집했어도 더 기꺼이 칭찬했겠지만, 확실히 이렇게 예민하고 중요한 토픽을 이만큼 건강하게 짚고 넘어가는 작품은 드물다고 생각.
시즌 2에도 청소년과 어른들의 각양각색 고민 사연이 등장했고 여러 유의미한 질문과 생각거리들을 던졌다. 개취로는 무성애를 다룬 에피소드, 에이미(에이미 루 우드)의 버스 성추행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다. 시즌을 거치며 캐릭터들이 나름의 성장을 겪고, 그들의 관계성이 변하며 드라마도 조금 더 깊이 있어진 느낌이다. 뉴 페이스들도 개성이 뚜렷해 좋았다.
시즌 3도 컨펌 나면 당연히 볼 것. 제작진은 이제 그만 메이브와 오티스가 쌍방 통행이 되게 해달라(..)
메시아 시즌 1
(Messiah)
어느 날 시리아에 홀연히 나타난 남자. 그는 모래 폭풍을 뚫고 난민들을 이스라엘 국경으로 이끌고, 토네이도에 휩쓸리던 텍사스 마을의 교회 앞에 나타나더니, 무수한 추종자들을 이끌고 워싱턴 DC로 가 링컨 기념관 앞의 연못을 걷는 기적을 선보인다. 세상은 그를 알마시히라 부르고, CIA 요원 에바(미셸 모나한)는 그를 의심하며 뒤를 쫓는다.
‘메시아’ 시즌 1 전체가 ‘만약 지금 이 시대에 예수가 재림한다면?’이라는 물음에 대한 고민과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보는 내내 저게 진짜인지 사기극인지 헷갈렸는데, 어느 지점부터는 묵묵부답인 알마시히를 자신의 구세주라 여긴 사람들의 행보가 관전 포인트가 됐다.
시즌 2가 나오길 바라지만 시즌 1의 엔딩으로도 좋은 마무리였다. 이미 묵직한 질문들은 충분히 던졌으니까.
스트레인저 시즌 1
(The Stranger)
예고편에 ‘앤트맨과 와스프’의 고스트(해나 존-케이먼)가 나와서 보기 시작한 드라마.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가장 아담(리처드 아미티지)이 아내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다. 작가 할런 코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그가 직접 제작도 맡았다.
목이 잘린 채 발견된 알파카, 숲에서 전라로 발견된 소년, 그리고 아담 아내의 실종이라는 세 가지의 사건이 맞물려 각각의 떡밥이 투척되는 초반부는 꽤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어떤 형사의 폭주와 세상의 모든 비밀을 다 까발리겠다는 범인의 정의가 두드러지면서 김이 팍 샜다. 저 동네도 어쩜 저렇게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것인지(..)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드라마니 여기서라도 정의구현 사이다를 보고 싶었건만 결말도 미묘하게 찝찝했다.
이블 지니어스: 누가 피자맨을 죽였나?
(Evil Genius: The True Story of America's Most Diabolical Bank Heist)
FBI 주요 사건 203호라고도 하는, 펜실베이니아 이리에서 일어난 은행 강도 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목에 폭탄을 두른 한 남자가 은행 직원에게 25만 달러의 현금을 요구하고, 현금을 받아 나오는 길에 경찰에 체포되는데 ‘자기 목에 있는 폭탄을 해체할 열쇠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1화에 실제 사건 당시 현장의 풋티지가 나오는데, 설마 보여줄까 싶던 장면을 실제로 보여줘서 비명도 못 질렀다(..) 사건 자체가 끔찍한 건 당연하고 기괴하다. 저 동네에 대체 무슨 마가 껴서 저런 사이코패스들이 모여 산 걸까. 가해자들이 저지른 죄에 비해 다들 병으로 너무 쉽게 죽어버리고, 그래서 결국 사건의 진위는 영영 밝힐 수 없게 돼서 속이 더 답답해졌다. 다큐에 출연한 인터뷰이가 했던 말이 딱이다.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다면 왜 재판을 받게 하고 무죄를 선고해서 사회를 위험하게 합니까?”
아라시의 다이어리 -또 다른 여행-
(ARASHI's Diary -Voyage-)
2020년 12월 31일까지 매월 공개되는 일본의 국민 아이돌 아라시의 다큐멘터리. 이 시국 때문인지 동시 공개는 아닌 듯하다. 일본에서는 2화까지 공개됐지만 국내 넷플에는 1화뿐. 1화를 보는데 새삼 20여 년의 세월이 느껴지기도 하고 오랜만에 듣는 추억의 노래들이 반갑기도 했다.
팬은 아니지만, 아라시는 드라마나 영화로 이미 친숙해진 그룹이라 활동 휴지(休止) 소식이 조금 충격이었다. 아라시는 왠지 앞으로도 계속 넘사벽 현역의 포지션을 굳건히 지키고 있을 것 같았는데. 만약 소감 내지는 리뷰를 남긴다면 이 다큐멘터리의 최종화까지 다 보고 난 뒤가 될 듯하다. 워낙 게을러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