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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잠 Mar 18. 2020

일상200317

실력

 문득 ‘실력’이라는 것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무언가를 능숙하게 혹은 독창적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린 실력이라 이야기한다. 태생적으로 재능이 있어서 또는 긴 시간 노력을 통해 어떤 이들은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음 저 사람은 실력이 뛰어나군!’이라 감탄한다. 과정이 어떻더라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실력을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놀라워한다. 왜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높은 수치의 실력을 쌓기 위해 각자만의 방식으로 노력한다. 아주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오랫동안 반복적인 수행을 통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식을 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복보다는 새로운, 창의적인 어떠한 방식을 찾아내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발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당연히 이 모든 경우엔 투자가 필요하다. 시간적 투자가 필요하기도, 물질적 투자가 필요하기도 한다.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비용 대신 그 무언가에 몰두하는 그들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의심을 갖지 않고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끈기. 이것들이 모여야만 앞서 이야기한 높은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실력을 대함에 있어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고 싶어 하는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내가 잘하고 싶어 하는 분야는 (뻔뻔스럽게도) 무척 많다. 당연히 글을 잘 쓰고 싶기도, 오래 달리기를 잘하고 싶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책을 잘 팔고 싶기도 하고 말을 조리 있게 하고 싶기도 하며 맨몸 운동을 꾸준히 잘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의 수많은 것들을 잘하고 싶어 하지만 실상 돌아보면 그것을 위한 노력을 그만큼이나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도달하고 싶은 지점이 높아서일까? 그래서 미리 포기해버리는 걸까?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나름 만성적인 게으름에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을 주고자 ‘목표 지점을 낮게 잡기’라는 방식도 취해보았지만 결과는 도돌이표였다. 눈에 보이는 목적지조차 쉬이 가려고 하지 않는 나의 성향은 그저 바라는 이상만 늘어놓을 뿐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채 아니, 어쩌면 제자리걸음 조차 하고 있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있기만 하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언급하려는 것은 그 만성적인 게으름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게 한 나의 행동 양식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하는 척’을 한다는 것. 쥐뿔 가진 것도 없으면서 그 지점에 이미 ‘도달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대가는 자신을 대가라고 칭하지 않는다. 자신이 아닌 다른 다수의 누군가가 그/그녀를 대가라 칭할 때만 비로소 그 대가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의미와 자격이 충족된다. 아무리 내가 “어느 정도 대가가 된 것 같아”라고 이야기해봐야 사실 그 근처도 가지 못했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나 자신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인 평가를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그런 평가 행위 자체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결국 내가 가진 역량이나 그릇의 크기, 그리고 실력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하지만 쥐뿔 가진 것도 없는 나는 스스로를 어느 정도 도달한 대가라 칭하고,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닫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 아니, 이런 나에게 ‘발전’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실력 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지도, 객관적인 현재의 상태에 대한 평가를 들을 마음의 자세도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발전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둘 중 하나만 취하더라도 얻을지 말지 확실하지 않은 그 실력을 나는 모두 배제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저 충동적인 영상 매체의 선택과 휘발되는 불특정 다수의 지저귐을 소비하며 말이다. 머릿속 어딘가에, 마음속 깊은 한편에 실력에 대한 갈망을 쟁여놓고 수시로 꺼내 바라보며 한숨을 쉬어대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예의 그 의미 없는 소비를 이어간다. 결국 남는 건 가득 밀려오는 자괴감과 옅은 후회 그리고 찌꺼기처럼 진득하게 남아있는 자존심뿐이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이 또한 내게 도움이 되는 감정들이라고. 정말 그런 것일까? 이 자괴감과 후회, 숨기고 싶은 자존심이 정말 내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내가 모르는 어떠한 방식으로 내게 도움이 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알지 못하는 도움의 모습보다 그저 가만히 서있는 현재의 고착된 상태의 모습이 눈에 더 들어오고 내게 말한다. 그것은 실력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어서 빨리 내가 잘하고 싶어 하는 그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한다고 외치듯 이야기를 한다. 많이 들었다. 마음의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자다가 일어나 펜을 쥐어주면 그 이야기를 자동으로 적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들었지만 정작 그 이후의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고민의 시간도 길었지만 그만큼 합리화의 시간도 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합리화는 어떤 마법 같은 최면 작용을 일으킨 것인지 마치 내가 그 노력을 이미 한 사람처럼 만들어버렸다.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치는 아직 한참인데 마치 그곳에 도달한 듯이 생각하고, 행동한다. 현재의 모습에 대한 자괴감, 후회, 찌꺼기 같은 자존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내가 느꼈기에 그것들이 마치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땀과 시간과 노력을 대체한 것처럼 여겨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감정들이 마치 생산적으로 어떠한 실력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정작 남아있는 건 감정을 지우기 위한 거짓된 허세와 허영뿐, 난 그저 내뱉기도 아까움 숨을 내쉬던 바로 그 자리 그대로 있을 뿐이다.


 어떠한 실력을 쌓기 위한 고된 시간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내게 전달해준다. 그 행위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게. 하지만 그 감정을 느껴본지가 언제인지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꾸준히 무언가를 함으로써 느끼는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가장 최근 느꼈던 게 언제였는지 생각하는 것조차 이젠 고된 일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정말 나는 언제 성장을 해보았지? 언제 정말 실력을 쌓아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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