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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저기, 그 단추 하나만 풀어줄래요?

[생각편집숍 아이템 05] 말랑말랑 유머 렌즈

by 이승주
사우스파크2.jfif [상상해 보라. 이 귀여운 얼굴에서 나오는 찰진 욕을!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목 끝까지 빼곡한 단추구멍을 채운 듯한 그런 사람들.


소위 '엄근진'으로 대변되는 이런 이들을 만나면, 일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지나친 빡빡함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목숨을 건다거나 (잠깐! 이 마침표가 왜 여기 찍혀있죠?), 행여 논쟁이 생길 때는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살벌함이 느껴진다. (에잇! 내 진지함으로 뽀샤버리겠다!)


그리고 더 최악인 건, 이렇게 딱딱하게 굴어봤자 솔직히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일단 사람이 남지 않고 (저 양반, 안 되겠네. 패스!), 그 생각이 진짜 무엇이었는지 쉽게 기억되거나 설득되지 않는다. (단지 내 머릿속에 남은 건, 너의 때때거리는 제스처였을 뿐)


그러니 '진짜 좋은 생각'을 하고 싶다면, 난 우선 '유머'에 익숙해지라 적극 권하고 싶다.


유머란 마치 저 JYP가 강조하는 '공기 반, 소리 반'처럼, 메시지에 달달구리를 입히는 아주 유연한 전략일지니. 누군가와 각 잡고 싸우는 대신, '생각'에 기름칠도 하고, 웃으며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야말로 1석 2조의 전략!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마치 북마크처럼 즐겨보는 '유머 스승들'을 한번 정리해 보았다. 물론 그 유머의 층위는 다 다를 것이니, 적당한 응용과 믹스전략을 통해 당신만의 '유머 세계'를 만들어가길.


1.절묘한 비유의 마라맛 - 사우스파크 (Southpark)


후배의 추천으로 처음 <사우스파크>를 봤을 때, 솔직히 엄청난 세계붕괴의 충격을 받았다.


<사우스파크>는 미국의 '트레이 파커'와 '맷 스톤'이 제작한 '19금 애니메이션 시리즈'인데, 그야말로 그 수위가 후덜덜 하게 넘나들기 때문..


“아니, 이걸 진짜 말한다고?”, “아니, 이걸 진짜 이렇게 표현한다고?” 정말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주제 선정, 소재의 괴팍함, 표현의 자유로움에서 '일정한 평균치'가 없을 정도. (나아가 애니메이션 사운드의 팔 할이 ShiXX, FXXX으로 난무한다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우스파크>를 '마라맛 유머 스승' 1번으로 추천하는 이유는, 그 '절묘한 은유와 과장'에 있다.


첫째로 은유! <사우스파크>는 '사우스파크'라는 동네에 사는 네 명의 초등들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한다. (카일, 스탠, 케니, 그리고 무시무시한 이빨장군 에릭) 그러니, 일단 여기서 “으음?” 하며 공격의 수위가 줄어든다.


캐릭터들의 외모가 궁금하다면, 실제로 인터넷에서 찾아보시길! 실제 2D 컬러종이로 만든 이 귀염뽀짝한 캐릭터들은, 생김새만으로는 그저 꼭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움을 발산하나니. 일단 입만 열면 발산되는, 어마어마한 욕과 칼날 같은 풍자는 그나마 이 '큐트한 외모' 덕분에 한번 '들어줄 만한 것'이 된다. 이렇게 '사우스파크'는 일단 표현의 완충지대부터 영리하게 찾아낸 것!


둘째, 엄청난 과장기법이다. <사우스파크>의 에피소드 중 내가 '베스트 레전드'로 추천하는 것은 바로 '변기뚜껑 논쟁 편'인데, 스토리는 이러하다.


남자들이 볼일을 본 후, 항상 변기뚜껑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자 여자들은 그 넓어진 변기뚜껑에 방심하고 앉다 아예 변기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남자들은 변기뚜껑을 내리지 않고 볼일을 보고. 마침내, 마을 전체 여자들이 반 이상이 '변기물 속에 빠져 단체 장례식이 치러지는 와중, 드디어 기발한 해결책 하나가 탄생한다. 바로 '변기에 안전벨트를 설치하는 것!'


갑자기 화장실 유머를 골라 죄송하다. 하지만 정말 이를 능가하는 에피소드를 찾기 힘들었다. 처음엔 “뭐 이런 병맛이 있어?” 생각했지만, 따져보면 따져볼수록 이는 정말 '천재적인 유머'다.


왜냐하면 <사우스파크>는 정말 '사소한 문제'를 '극한의 결과'까지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변기뚜껑? 그냥 사소한 부부싸움 주제잖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우스파크는 묻는다. “근데 그걸 진짜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번 들어 볼래? 어디까지 일이 커질 수 있는지?”


그러니 이 황당한 비유 속에 숨은 진짜 메시지는 이거다. “우리는 사소한 다툼을 방치하다, 더 복잡한 해결책을 만들진 않나요?” 한마디로 그때그때 본질을 돌아보지 않는, 우리의 나태함을 꼬집고 있는 것!


그러니 누군가 회의실에서, 진짜 본질은 간과한 채 복잡한 솔루션만 주장하고 있다면. 그저 혼자라도 슥- 웃으며 여유롭게 얘기해 보자. “그거 사실, 변기 안전벨트 같은 문제 아니에요?”


누군가 알아들으면 오케이. 하지만 알아듣지 못해도, 적어도 내 안의 분노는 참을 수 있다.


2.스스로를 낮추며 웃으며 디스하는 고지능 - 이수지의 대치동 엄마


요즘 '고지능 유머'로, 솔직히 이분을 능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바로 개그우먼 이수지다.


특히 유튜브에서 그녀의 '대치동 엄마 패러디'가 나왔을 때는, 그야말로 몇 십번 반복재생하며 눈물을 흘렸다. 너무 웃겨서. 그리고 너무 통렬하게 뼈를 때려서.


“제이미~그렇게 하지 않아요! 제이미~Don't do that!”


대치맘의 상징인 값비싼 몽클레어 패딩을 입고, 아직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제이미를 이리저리 학원 라이딩 하는 이수지. 소위 학군지 열풍인 '4세 고시, 7세 고시'를 비판하는 장면이기도 한데. 강사들이 제이미에게 던지는 사소한 피드백에, 이런저런 기대와 상상을 덧붙이는 그녀의 '내 맘대로 해석'은 말 그대로 코미디 그 자체다. (네? 영어학원 선생님? 네네! 우리 드디어 혼자...화장실을 갔다고요? 오 마이 갓!)


더불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비싼 자차 안에서 비싼 설렁탕을 허겁지겁 먹는 그녀의 모습은, 스스로 거침없이 망가지면서도 시스템을 때려버리는 통렬한 잽.


만약 이수지가 정색하고 “한국 교육 시스템은 잘못됐습니다”라고 주장했다면, 아마 이런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혼자 다큐멘터리 찍으세요?”, “꼰대 같은 설교가 따로 없네.”라고.


그런데 새근새근 웃으면서, 스스로 바보인 척 오버하면서, 그 시스템을 '제대로 때려버리는' 이수지의 유머는 확실히 고단수 중의 고단수다.


그러니 회사에서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일들, 가령 '그냥 보여주기식 야근'을 강조할 때, 이수지의 '고품격 유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좋다. “흥! 절대 전 야근할 수 없어!” 독불장군처럼 시위하는 대신, 조용히 웃으며 잽을 날리는 거다.


“아, 야근해야죠! 말도 안 되는 야근을 적극 장려하는 우리 회사, 굿굿굿~”


물론, 야근 자체를 막을 순 없다. 단지 그 요상한 야근문화에 미세한 틈을 내는 것이 목표.


3.시간차 유머 공격 - 일상의 너구리 부장님들


다음은 '시간차 유머 공격'이다.


딱히 이를 대변하는 대표 스승님은 찾기 힘들었지만, 오랜 사회생활을 하며 나는 이 유머의 패턴을, 내 주변의 '너구리 같은 부장님'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너구리 부장님'들은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어서, 겉으로 볼 땐 거의 기력이 쇠한 인물들이다. 무슨 말을 해도 알듯 말듯, 읊조리는 듯한 말투로 딱히 누군가의 신경조차 건드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들의 '유머 공격력' 자체는 그야말로, 우주 최강일 것이니. 여기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본다.


첫째, 일단 못 들은 척 하기. 우리의 '너구리 부장님'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건 기가 막히게 안다. 때문에 후배 혹은 상사가 자신에게 무리한 부탁을 할 때, 바로 화를 내는 대신 눈동자를 최대한 무심히 굴리며 답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침묵'을 지키는 시간차 전략.


그러면 상대는 “저 사람,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답답해하다, 어느 순간 공격의 길을 잃는다. 혹여 다시 질문을 한다 해도, 너구리들의 민숭맨숭한 반응에 힘이 빠질 뿐이다.


“지금, 내 말 알아들었어?” - “.........”

“지금, 내 말 알아 들었냐고?” - “아...네네! 그러니까요.” (응, 근데 뭐가 그렇다는 거지?)


두 번째, 상대의 질문을 반문하며 화제를 전환하는 전략이다. 이는 단지 '답을 하지 않는 것'보다 조금 더 진화된 기술일지니. 가령 팀장이 하기 싫은 프로젝트를 너구리 부장에게 일임했다 치자. 뭐, 가령 3일 안에 PPT 200장 완성하기 프로젝트?


그러면 너구리 부장은 무심하게 반문한다. “아..., 3일 안에.” 그러면 상대는 반가워한다.


“그렇지. 그러니까 3일 안에 완성하라고.”

“아...그러니까 PPT 200장을?”

“응응. 그러니까 PPT 200장을”

“아...그렇구나. 3일 안에...PPT 200장을....하하. 근데 저희 컴퓨터부터 바꿔야 하지 않아요?”


여기서의 디테일한 반격은, 마지막에 해탈한 듯 웃으며, 아주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것이다. 달리 말해, 상대의 말에 반격의 의도를 보이진 않지만, 이리저리 '질문을 옮겨 다니며' 핵심 자체를 흐리는 전략.


물론, 이 전략이 먹히는 경우는 새로 제시하는 화제가 '상당히 강력할' 경우다. 그러니 당신이 아직 연차가 낮다면 '너구리 부장' 옆에서 온갖 화제를 섭렵해라.


회사의 뉴스와 소문에 누구보다 빠른 너구리 부장들은, 당신이 의지할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로 쏠쏠한 '소스'들을 던져줄 테니.


그래, 유머는 최고의 생각기법이니까.


자,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물론 '유머로 돌려치기' 전략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고수들이 많을 것이다. 단지 내가 이 글에서 주장하고 싶은 건, '웃음이 있는 곳에 설득이 있고', '정색보다 유머가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


그러니 오늘부터 당신도, 누군가를 제대로 설득하기 위해,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굴리기 위해, '유머'를 적극적으로 배워보라. 유머 감각이 없다고? 괜찮다. 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대중문화 속 (예능, 드라마 프로그램) 초고수 유머 고수들을 열심히 관찰하다 보면, 자신에게 딱 맞는 '유머렌즈'를 장착할 수 있을 테니.


유머도 일종의 MBTI다.

자신만의 선에서, 최고로 자연스러운 그 안전하고 기발한 '나만의 유머 존'을 찾아보자.


[생각편집숍 아이템 06. 말랑말랑 유머 렌즈]


*생각도구 : 정색과 비판 대신 살랑거리는 뇌

*효능 : 딱딱한 논리를 매력적인 이야기로


생각해보면 진짜 똑똑한 사람은, 늘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다.

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외화 속 주인공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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