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었다. 예전에 나는 새벽에 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꼭 챙겨볼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다. 챔스는 또 어떤가.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지 않았던가.
승패가 이미 결정 난 상황에서 녹화방송으로 경기를 보게 될 때도 있다. 이런 경우 대체로 축구팬들은 결과를 미리 아는 걸 원치 않는다. 스코어 말하지 말라는 경고도 불사한다. 그들은 예측불허의 과정 속에서 희로애락, 바로 그 모든 감정을 다 즐기고 싶은 거다.
나는 결과를 아는 게 두렵지 않았다. 축구경기를 보는 내겐 결과는 중요치 않았다는 얘기다. 도전과 열정으로 가득 찬 경기였다면 나는 늘 완벽하게 그 과정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 마음속 MVP도 오롯이 과정으로써만 판단했다. 최선을 다한 멋진 플레이를 보여줬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그들이 곧 내겐 주인공이었다.
스티에셩(史铁生)이라는 중국 작가가 있다. 참 좋아한다. ‘삶에 관하여/죽음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그는 축구경기를 인생에 비유한 바 있다.
축구는 90분 우리 삶은 90년, 시간이 짧고 긴 것만 다르다고. 그러고 보니 과정을 즐겨야 하는 축구와 우리 인생은 정말 똑 닮아있더라.
절망 끝에 선 사람 앞에서 위한답시고 쉽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 그들에겐 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과정’을 봐야 하는 삶의 ‘태도’까지도.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이 좋아 수업시간에 원문을 번역하며 행간의 의미를 토론하기도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며 학생들과 우리 생에 대하여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리라.
내 학생들은 대체로 전반전을 열심히 뛰고 있는 중이다. 나는 전반전은 선방했고 골도 몇 골 넣었으니 괜찮은 경기였다. 후반전 시작 전엔 ‘수비만 잘해도 되겠다’ 싶었다. 아뿔싸! 후반 시작하자마자 연달아 두 골을 내주고 말았다.
아! 인생이란...ㅠ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 다시 전속력으로 질주해야 한다. 반전의 기회가 와 줄지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안다. 과정을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라는 이 경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결국 삶은 목적이 아닌 과정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삶에 목적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축구를 이기고 싶지 않다면 경기를 더 이상 계속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인생에 꿈이 없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듯 목적 없이는 과정 역시도 펼쳐질 수 없을 테니.
헤겔도 이 대목에서 한 마디 보탤 것만 같다. “개별적인 것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목적으로 나아가지만, 중요한 건 ‘되어 가는 과정 그 자체’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