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한다. 고2 아들이 결국 자퇴 수속을 끝냈단다. 그리고 함께 바닷가에 왔노라고. 작년 내내 학교에서 친구들로 인해 힘들어했던 녀석이다. 정신과 검사 결과 심리적으로 그로기 상태라고. 순간, 그 아이가 겪었을 고통이 느껴져 와 눈물이 났다. 이게 어찌 남의 일일 수만 있으랴.
사회적 거리두기도 녀석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의 노을이 참 슬프다. 오래전 ‘바닥에 떨어진 교권’을 얘기하며 깊은숨을 내쉬던 선생님이 떠오른다.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선생님은 당신 반의 소위 ‘반항아’라 불리는 한 학생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아이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아예 자리를 잡고 한동안 떠나질 않았었다. 며칠 있으면 수련회를 간다고 했다. 그 아이는 사고 칠 위험성으로 인해 그 여행에서 제외된 상태. 학교 측의 결단이라고 했다.
얼마나 심각한 사고뭉치였으면... 한편 공감하면서도 나는 그 아이가 수련회를 가고 싶어 한다는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가 안쓰러웠던가 보다. 그 순간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삼켜졌던 한 마디. ‘선생님만이라도 한 번만 그 아이를 믿어주시면...’
“학교 측의 결정에 상관없이 선생님이 책임지고 그 아이 딱 한 번만 믿고 수련회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느낀다면 그 친구도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요?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나는 무례하게도 감히 내 진심을 발설해버렸고, 평소 나와 코드가 잘 맞던 그 선생님의 얼굴에도 그만큼 고민의 그늘이 깊어졌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참을 모두가 포기해버린 그 아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한 얘기를 나눴었다.
지금 이 순간, 두 얼굴이 오버랩된다. 하나는 늘 가해자 그룹의 선봉에 서 있었을 그 친구와 또 하나는 그런 친구들로 인해 피해자가 된 내 친구의 아들. 둘 다 가슴 아프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 우리는 분명 뭔가를 해야만 한다. 별 수 없다며 그저 수수방관만 하고 있기엔 이로 인해 가슴 아픈 인생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오롯이 ‘믿고 기다려주는 것’ 말고 우리가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널 믿어’라고 강한 확신을 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조차도 가망 없다고 놓아버린 어둠의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노라고 ‘피그말리온 효과’를 강변하고 싶어 지는 이 진부한 마음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