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짙어질수록 혼자의 시간도 늘어간다. 코로나 19로 인해 ‘홀로 있음’이 훈련된 상태로 가을을 맞았다. 올 가을은 수월할까 싶었던 기대는 헛망이었을까. 시나브로 응축된 시간만큼 그 감정의 밀도는 무한대더라. 그럼에도 예년과는 뭔가 다른 이 느낌은 뭘까?
작년 이맘때였을 게다. 영화 수업 8주 과정이 끝나던 날… 감독님, 수강생들과 못다 한 영화 얘기를 나누다 막차를 놓쳤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던 가을밤이렷다. 게다가 홍대 앞이었다. 배터리 나간 스마트폰 타박하며 무작정 빈 택시를 기다리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발만 동동 구르며 도로 위를 응시하던 내 눈길이 무심코 맞은편 가로등에 머물렀다. 가로등 불빛 아래 가을비 내리는 밤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걷자. 걷다가 빈 택시 지나가면 타지 뭐.
도로안내표지판을 보며 집 방향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겁도 많고 길치인 내가 그 새벽 1시가 넘은 깊은 밤 홀로 걷는다(미친 짓이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걷는 길이 두렵지 않았다. 1시 20분 걷기 시작, 태릉 우리 집 도착 시간 5시 50분. 대체 몇 시간을 걸은 것이냐. 무념무상인 채로 하염없이 걷던 그 길을 동행해 준 가을비, 정말 고마웠다.
그토록 아팠던 작년과 비교해보니 올 가을은 내가 외로움이 아닌 고독의 시간 속을 걷는 것도 같다. 폴 틸리히는 ‘홀로 있음의 고통’이 ‘외로움(loneliness)’이라면 ‘고독(solitude)’은 ‘홀로 있음을 즐기는 상태’라 했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외로움에 비해 고독은 확실히 긍정의 힘이 느껴진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극복하는 건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말없이 나뭇잎의 바스락 거림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자만이 가능하다 하지 않던가.
홀로 있을 때라야 우리 안의 심연 속에 꼭꼭 숨어있는 자아와 대면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어쩌면 내면의 자아와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매번 외로움에 지고 마는 게 아닐는지. 가을엔 이렇게 고독을 온몸으로 느끼다가도 또다시 일상적 삶으로 돌아와 살아내야 하는 게 인생인 듯하다.
사랑할 때조차도 ‘홀로 있음’을 결코 이길 수 없는 게 삶이라면 그 외로움을 나의 일부로 끌어안고 고독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고독을 짊어질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단다. 사랑과 고독은 공존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사랑하면 외롭지 않을 거야’라는 헛된 소망에 기대기보다 고독을 짊어지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만 있다면 이 가을의 고독은 감내할 이유가 충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