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쯤 되었을까. 기억도 가물하다. 아주 잠깐 페이스북 계정이 있었다. 그때 몇 안 되던 친구 중 지금 나의 페벗은 딱 두 분. 그 한 분이 이산하 시인이다. 선생님은 나를 모르시겠지만.
추석 연휴에 선생님의 에세이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읽었다. 책 읽는 동안 얼마나 자주 가슴이 뜨거워지고 울컥하던지. 무겁고 아팠기 때문이리라. 그 111편의 단상마다 댓글난이 있다면 일일이 답하며 나누고픈 얘기들 마음속에 되뇌며 그렇게 오랜 시간 읽고 또 읽었다.
‘한국현대사 앞에서 우리는 모두 상주’라는 시인의 외침이 너무도 아릿하게 스며오는 제주4.3 장편서사시 [한라산]. 슬픈 [한라산]은 시인이 꿈꾸던 세상과 실존적 고뇌 속에서 태어난 시다.
[한라산]에 오를 때보다는 조금 가볍게 만난 문학소년 ‘철북이’. 헤어질 땐 아주 큰 울림을 주고 떠났다. [양철북]은 시인의 자전적 성장소설로서 주인공 양철북과 법운스님이 여행하며 주고받는 대화가 압권이다. 그들이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멋진 덤이던가.
‘양철북’이라는 이름엔 ‘세상에 침묵하고 방관하는 자들의 의식을 두드리는 영혼의 북소리’를 갈망했던 시인의 삶에 대한 방향성이 투영되어 있었다.
시간은 흘러 신간 에세이를 통해 시인을 다시 만났다. 약자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거둬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그들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어느 생이든 늘 먼저 베인다는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책을 읽고 난 후 나에겐 미션이 생겼다. 시인의 단상에 나의 진심을 담아 댓글을 달자. 나 역시도 시인의 고뇌에 공감하며 차오르는 단상이 가슴 한 가득이므로. 나만의 소심한 방식일지언정 옳다고 믿는 삶의 모습으로 나 또한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으므로.
아직도 뚜렷이 기억한다. [양철북]에서 시인이 던진 화두 하나, ‘줄탁’.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인이 그랬다. 북을 계속 치며 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무거워 다시 알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고.
내 고단한 생을 살아내는 데 급급한 나. 시인의 절망이 켜켜이 쌓인 이 시간 너머에서 나를 때린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파울 첼란의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모래] 속 ‘이끼와 쓰라린 치모로 만든 북’을 찾는 중이다. 지금 나는 시인을 위해 북을 울려주고 싶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