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하지만 절실하게

by 지오킴


단순하게, 하지만 절실하게(Simply, Desperately)


요즘 책을 너무 샀나 보다. 내게 온 녀석들이 집안 곳곳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 친구들 자리 찾아 서가를 정리했다. 평생 욕심낸 거라곤 책밖에 없는데 그 책들은 독일에서 내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든 벗들의 부재로 인한 헛헛함을 다시 채워가는 중이다.


서가 맨 아래 칸에서 발견한 독일어 작문노트. 독일에서 어학원 다니며 매일 썼던 독일어 일기다. 추억 소환!


그날의 날씨 ‘짙은 슬픔, 눈물 소나기, 감동 주의보’


버스에 앉아 창밖 가을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두 눈에서 순식간에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누가 볼세라 재빨리 닦아내도 소용이 없다.


그때 손에 전해진 온기. 눈을 떠보니 앞좌석 백발의 독일 할머니가 몸을 뒤로 돌리고 내 손을 잡고 계셨다. 무언의 위로를 건네는 따뜻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꾹꾹 눌렀던 설움이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손을 잡힌 채로 그렇게 한참을 더 숨죽여 울었다.


종점인 지하철역 도착. 할머니는 내 손을 놓지 않았고 우리는 같이 버스에서 내렸다. 감사인사를 했다. 이제 괜찮아졌노라고. 할머니 뺨 위로 흐르던 눈물. 나를 꼭 안아주시고 발걸음을 재촉하시던 할머니.


그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할머니의 그 따스했던 눈빛이 또다시 나를 울린다. 연락처라도 여쭤봤어야 했다. 뒤쫓아 갔어야 했다(나도 그런 어른이고 싶다).


빛은 안 보이고 어둠의 터널이 계속될 것만 같던 그때는 내 생이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살아가야 할 의미가 사라졌다고 믿었고 존재의 이유도 무로 변해버렸으므로.


아니더라. 우리 삶에 주어진 특별한 존재 이유 같은 건 없더라. 자연이 이유를 알아서 존재하는 게 아니듯 우리도 그저 세상에 던져진 채로 살아가는 것이더라.


그리고 내 존재의 이유는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시인 릴케가 노래하지 않던가. 별들이 숱한 인력의 그물 속에 쉬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그저 존재하면 되는 거라고. 자기 자신으로 교육되어 가며...


그러니 너무 복잡하게 고민하지 말자. 희망이 사라진 곳에도 스스로 소박한 이유를 부여하며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자는 거다.
단순하게, 하지만 절실하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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